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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1974년 5월 오종상씨(당시 34세)는 경기 평택에서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말 한번 잘못했다가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오씨는 학생에게 “정부가 분식을 장려한다면서 고위층은 국수 몇 가닥에 계란과 고기가 태반인 분식을 한다. 그러니 국민이 시책에 순응하겠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북과 합쳐서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혐의도 받았다. 여고생은 학교 선생님에게 이 말을 전했고 선생님은 오씨를 신고했다. 그는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일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정부를 비판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몰렸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불러주는 대로 썼더니 ‘자생적 공산주의’란 칭호를 씌웠다. 죄명은 반공법과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다. 오씨는 출소 뒤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으로 .. 더보기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훌륭한 시는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다른 말로 감정이입을 시키는 힘이 있다. 요즘 내 귓전을 맴도는 시가 있으니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침묵 속에서’다. 시는 감정이입의 폭이 소설보다 넓다. 즉 제멋대로 해석할 여지가 더 크다. 이 시가 좋은 까닭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억장이 무너질 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때, 전라도 사투리로 ‘중치가 막힐’ 때, 저 무수한 소란과 웅성거림에 몹시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침묵하게 된다. 이런 내 감정이 시 ‘침묵 속에서’에 제대로 투사된다. 네루다는 노래했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 더보기
그런 대통합은 없다 정치 지도자치고 통합을 꿈꾸지 않는 이 있을까. 이승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박정희는 국민 총화(總和)란 말을 즐겨 썼다. 총화는 ‘전체의 화합’으로 통합과 비슷한 뜻이다. 그 뿌리가 일제란 설도 있지만 그는 자나 깨나 국민의 총화와 단결을 주술처럼 외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통합에 관심이 많다. 엊그제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민간위원 18명 인선을 발표했다. 지각 인선인 데다 규모 축소, 위원 면면으로 보아 대통령의 대통합 의지가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 절반이 대선 때 새누리당 캠프에 몸담거나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인물들이다. 이런 인적 구성을 갖고 지역·세대·계층·이념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례가 있다. MB정부는 2009년 말 대통.. 더보기
계기를 모르는 정권은 실패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사건이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인데 그래선 안된다. 미국에서 윤 대변인이 경질된 지 20일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끼친 충격을 생각하면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었건만 자기반성이 빠졌다. 그 뒤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앞으로 인사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뿐이다. 한국이 사건·사고가 넘치는 ‘다이내믹 코리아’인 건 정평이 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레테의 강으로 흘려보낼 일과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윤창중 사건은 사후 처리를 단단히 마무리해야 할 일이다. 발생지 미국에서의 사법처리 얘기가 아니다. 우리 편에서 철저한 사태수습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 더보기
봄날은 가고, 음악이 위로다 ‘봄날은 간다’는 불후의 명곡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들을 때 가장 한국적인 연분홍의 진달래꽃이 저절로 떠오른다. ‘겨울나무’란 동요가 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로 시작하는 가사가 동요답지 않게 심오하다. 특히 2절이 그렇다.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이 정도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고 한 가 생각난다. 노래로 말문을 연 건 음악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리는 때로 위로받고 싶다. ‘삐에로’처럼 웃어야 하는 900만 감정노동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기자도 광의의 감정노동자다. 싫은 뉴스라도 듣고 챙겨야 한다. 뉴스의 감옥에 갇혀 ‘쇼는 계속돼야 한다’를 강요당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