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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1974년 5월 오종상씨(당시 34세)는 경기 평택에서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말 한번 잘못했다가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오씨는 학생에게 “정부가 분식을 장려한다면서 고위층은 국수 몇 가닥에 계란과 고기가 태반인 분식을 한다. 그러니 국민이 시책에 순응하겠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북과 합쳐서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혐의도 받았다.

여고생은 학교 선생님에게 이 말을 전했고 선생님은 오씨를 신고했다. 그는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일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정부를 비판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몰렸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불러주는 대로 썼더니 ‘자생적 공산주의’란 칭호를 씌웠다. 죄명은 반공법과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다. 오씨는 출소 뒤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으로 살지 못했다. 2010년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씨는 올 3월 라디오에서 “당시 학생들은 정부를 비판하면 다 공산주의나 빨갱이로 교육받았어요”라고 했다.

 

요즘 시대에 40년은 까마득한 과거다. 칠순이 된 오씨도 옛날에는 그랬다는 듯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종북 색깔론은 건재하다.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옛날엔 빨갱이로 몰던 것이 지금은 친북·종북 몰이인 게 약간의 변화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너 빨갱이(종북이)지” 하면 증거가 불충분해도 게임 끝이다.

 

그걸 확인시킨 사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며 주야장천(晝夜長天) 와글와글하는 사건이다. 나는 이 사건을 ‘NLL 포기 사건’이라 부르겠다. 그게 NLL 회의록 ‘공방’이나 ‘논란’보다 사건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이 정권에서 ‘NLL 포기 사건’이 본격화한 것은 6월20일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정원 회의록을 단독 열람하고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고 주장함으로써다. 국정원 불법 정치개입 정국은 순식간에 NLL 정국으로 전환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쏠린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물타기였음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랬다. 여당은 이걸 동원해 민주당을 ‘안보 불안 정당’으로, 참여정부 인사들을 ‘국기문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3년 7월 29일/경향신문


 

이게 색깔론의 위력이다. NLL 포기 사건은 생뚱맞고 뜬금없다. 그럼에도 먹혀든다. 분단국가에서 안보불안이란 말이 발휘하는 위력이다. 노무현이 김정일을 만나 NLL을 포기했다고? ‘애국시민단체’들이 궐기한다. ‘대한민국 생명선 NLL 사수 국민대회’가 열린다. 이제부터 사실관계나 논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그게 바로 색깔론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공개한 정상회담 회의록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없다. 그러나 그건 중요치 않다. ‘그들이 NLL을 무력화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국가기록원 회의록 원본이 없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노 정권이 회의록을 넘기지 않은 거다. 공개되면 국민적 지탄이 두렵기 때문에….’

강조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색깔론은 논리와 상관이 없다. 때론 비논리가 색깔론의 성립조건이며, 만약 논리가 닿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색깔론이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색깔론에 대한 어떤 진지한 성찰, 비판도 색깔론이 논리를 갖추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없을 거란 생각도 한다. 논리적인 색깔론은 이미 형용모순이며, 적극적으로 논리를 거부하는 것이 색깔론이기 때문이다.

NLL 포기 주장은 노무현 정권이 좌파 정권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이라크에 파병한 노 정권을 좌파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저들은 그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최장집 교수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부제가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냉전 반공주의가 한국의 정당체제를 극히 협애한 틀에 가두어 놓았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갈등이 대표될 수 있는 여지를 극히 좁혀 놓았다는 것이다.”

16세기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썼다. 지주들이 양을 기르기 위해 농토를 갈아엎고 목초지를 만들어 울타리를 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쫓겨났다. 모어를 원용해 이 시대 한국의 정치상황을 규정하고 싶다. “색깔론이 민주주의를 잡아먹는다”고. 이 땅에 유구한 전통의 색깔론이 발호해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말이다. 색깔론이 수시로 출몰하는 사회에서 민주와 인권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며칠 전 여야가 NLL 정쟁 중단 선언을 했지만 그건 본질을 잘못 짚었다. 집권세력이 툭하면 색깔론에 의존하는 버릇부터 중단해야 한다. 아니면 한국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상황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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