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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그런 대통합은 없다

정치 지도자치고 통합을 꿈꾸지 않는 이 있을까. 이승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박정희는 국민 총화(總和)란 말을 즐겨 썼다. 총화는 ‘전체의 화합’으로 통합과 비슷한 뜻이다. 그 뿌리가 일제란 설도 있지만 그는 자나 깨나 국민의 총화와 단결을 주술처럼 외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통합에 관심이 많다. 엊그제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민간위원 18명 인선을 발표했다. 지각 인선인 데다 규모 축소, 위원 면면으로 보아 대통령의 대통합 의지가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 절반이 대선 때 새누리당 캠프에 몸담거나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인물들이다. 이런 인적 구성을 갖고 지역·세대·계층·이념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례가 있다. MB정부는 2009년 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들어 위원 48명을 임명하고 매년 40여억원의 예산을 썼다. 그러나 이 기구가 뭘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에게 MB 집권은 분열과 불통의 시대로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사회통합위 첫 회의에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 예고편인 듯하다. 그는 “법을 준수하지 않는 국민은 사회통합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그 수가 20~25퍼센트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논법은 일제가 강요한 내선일체(內鮮一體)란 구호를 닮은 데가 있다.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이지만 식민 통치를 미화하면서 조선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기만이었다. 동시에 이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조선인에겐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딱지가 붙었다.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시대에 와서는 이게 종북(從北)으로 바뀌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도 진주의료원 노조도 툭하면 종북으로 몰렸다. 이런 사회풍토에서 들리는 대통합이란 말이 무척 생경하다.

말콤 엑스는 흑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다 암살당한 미국 흑인 운동가다. 특이하게 그는 흑백 분리(segregation)를 통한 흑인해방을 주장했다. 흑인과 백인이 통합(integration)하는, 인종차별 없는 사회를 꿈꾼 마틴 루터 킹 목사와는 정반대였다. 말콤 엑스는 철저한 백인지배 국가에서 통합주의는 허구라고 비판하고 흑인들이 정체성을 찾아 급진적 해방운동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 흑인해방운동 지도자 말콤 엑스(1925~65). 흑백 통합이 아닌 흑백 분리를 주장했다.

 

 

그는 이런 연설을 했다. “왜 통합이 인종문제의 해결책임을 부인하는가? 제정신을 가진 흑인이라면 누구도 통합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정신을 가진 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정신을 가진 흑인이라면 백인들이 자기네들의 체면 유지를 위한 통합 이상의 것을 주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슬프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한다. 하지만 그들이 화를 낸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킹의 통합보다 말콤 엑스의 분리 주장을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과격해 보이지만 현실을 통찰하는 혜안이란 생각 때문이다. 통합은 거저 되는 게 아니다. 조건이 있다. 가진 자들이 양보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조건이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 증거다.

신문을 보면 허다한 갈등 요인들이 펼쳐지지만 이 시대 통합을 위한 가장 핵심적 부분은 경제민주화, 곧 양극화 해소라고 본다. 계층 갈등이니 이념 갈등이니 해도 먹고 사는 문제를 능가할 순 없다. 비정규직, 갑을관계 문제도 다 여기에 포함된다.

이치는 이렇다. 세상은 양극화로 치닫는데 누가 통합을 바랄까. 소수의 기득권자들뿐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최근작 <불평등의 대가>의 관점을 빌려보자. 스티글리츠는 “부유층은 상위 1퍼센트의 이익이 나머지 99퍼센트에도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산층과 빈민층을 설득하고 있다”고 썼다. ‘상위 1퍼센트’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진 상층부를 일컫는 광의의 개념이다.

상위 1퍼센트는 말콤 엑스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네들의 체면 유지를 위한 통합’ 이상의 것을 줄 생각이 없다. 그 정도를 허용해 기득권을 고착화하고 나머지 99퍼센트를 순치시키려 한다. 그가 말하는 불평등은 양극화와 동의어로 읽어도 무방하며 이는 경제민주화, 통합문제와 뗄 수 없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또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두고 “경기장이 상위 1퍼센트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했다. 우리 상황은 이보다 더 악화된 측면이 있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증거들은 많다. 대통령 취임 직전 국정목표, 전략, 과제에서 경제민주화가 삭제된 이래 관련 입법활동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이 갑을 상생론, 속도조절론을 내세우며 공정거래법 등 개정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외치는 대통합론의 실상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스티글리츠는 “하위 99퍼센트 소득층은 자신들이 상위 1퍼센트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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