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사건이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인데 그래선 안된다. 미국에서 윤 대변인이 경질된 지 20일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끼친 충격을 생각하면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었건만 자기반성이 빠졌다. 그 뒤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앞으로 인사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뿐이다.

한국이 사건·사고가 넘치는 ‘다이내믹 코리아’인 건 정평이 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레테의 강으로 흘려보낼 일과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윤창중 사건은 사후 처리를 단단히 마무리해야 할 일이다. 발생지 미국에서의 사법처리 얘기가 아니다. 우리 편에서 철저한 사태수습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면서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모든 책임을 안고 떠나는 것 정도로 상황 끝을 선언할 작정이라면 큰 잘못이다.

 

방미 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오른쪽). 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에 그를 발탁했는지는 미스테리다.

 


바로 ‘계기’란 관점에서다. 삶에서 계기는 아주 중요하다. 인생도 정권도 계기를 놓치면 고달프다. 계기란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다. 윤창중 사건은 정상외교를 수행한 일국의 대변인이 성추행을 저지르고 줄행랑쳐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 파문과 엽기성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막가파식 범죄를 능가하는 사건이다.

그 정도라면 이 사건을 흔한 말로 ‘뼈를 깎는’ 반성의 계기로 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새누리당 사람들은 그런 것 같지 않다. 대통령이 그만큼 사과했으면 됐지 자꾸 끄집어내서 좋을 게 뭐냐…. 이런 생각에 잊혀지기만 기다리는 듯하다.

이 사건의 극단성을 두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앞으로 5년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숭례문 화재가 이명박 정권의 앞날을 예시하는 불길한 조짐이 되었던 것처럼 이 사건은 윤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지배층의 인간적 자질과 정신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했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 보험회사 직원 하인리히가 발견한 것으로 1:29:300법칙이라고도 한다. 큰 산업재해가 발생하기 전 같은 원인으로 작은 재해와 사소한 사고가 이 비율로 생긴다는 것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최후를 맞은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남겼다. “개선(凱旋)으로부터 몰락까지의 거리는 단 한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사소한 일(a trifle)’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함을 보았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 말을 뒤집으면 하인리히 법칙과 비슷하다. 나는 이 두 개를 이렇게 묶고 싶다. “사소한 사고들이 쌓여 큰 사고가 된다. 따라서 사소한 사고를 변화의 계기로 활용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계기와 위기, 기회 모두 틀 기(機)자를 쓴다. 서로 통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윤창중 사건이 터지기까지 실로 ‘사소한 사고’들이 많았다. 윤씨가 인수위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에 발탁될 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걸 다 뿌리치고 예의 수첩·깜깜이 인사를 강행한 이는 박 대통령이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윤씨의 이치에 안 닿는 극우논리가 그렇게 박 대통령 맘에 쏙 들었던 것일까다.

3월 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해외 비자금 계좌 의혹이 불거지자 사퇴했다. 이미 총리와 장·차관급 인사 7명이 검증 과정에서 물러난 마당이었다. 경향신문은 ‘박 대통령, 인사 참사 사과하고 책임자 문책해야’란 사설을 썼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검증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즉 계기를 수용하지 않았다.

변화의 계기는 위기가 닥치기 전 몇 차례 오게 돼 있다. 2008년 촛불시위는 국민과 불통하던 이명박 정권이 소통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일대 계기였다. 그러나 MB는 그 반대로 갔다. 그의 측근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은 올 초 “MB 정부 최대 실수는 촛불을 맞으면서 개혁파가 좌초했고 엄청난 우향우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이란 경고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도리어 경쟁과 효율로만 갔다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란 말을 즐겨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도 인사실패 탓으로 귀결된다. 그가 환난 후 “위기상황을 제대로 보고 못 받았다”고 푸념했다는데, 대통령의 최대 권력인 인사를 잘못했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그도 초기 장관 등 인사가 삐그덕거릴 때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를 못 살렸다.

윤창중 사건이 국제적 망신인 건 맞다. 하지만 지나치게 바깥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나라 망신을 시킨 사건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잊혀지게 돼 있으니까. 그러나 미국은 잊더라도 우리는 잊으면 안될 이유가 따로 있다. 이 망신을 성찰과 변화의 ‘계기’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정권은 미래가 어둡다.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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