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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괴담을 좇는 사회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은 얼마 전 글에서 “올여름 영화시장에서도 한국 공포영화는 (북미 영화시장과는 반대로)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흥행에서 전멸했다”면서도 한 가닥 미련을 표시했다. “어찌 됐건 확신을 가져볼 만한 부분은, 한국은 여러 모로 ‘괴담의 나라’는 맞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각종 도시괴담들이 양산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문제들과 연관된 괴담들도 대거 창궐하는 환경이다. 불안과 공포가 사회전반에 깔려있다. 공포 장르가 안될 리가 없는 환경이다.” 여기까진 잘된 분석이다. 그러나 그가 영화인들에게 “용기 잃지 말고, 계속 도전해 보길 기대한다”라고 독려한 부분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한다. 그의 진단대로 한국은 현실이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럽다. 바로 그것 때문에 어지간한 공포영화론 대박은커녕 본전찾.. 더보기
[여적] 어른 그늘 속의 아이들 롤링 스톤스가 부른 ‘눈물은 흐르는데(As Tears Go By)’에서 ‘나’는 어느 저녁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웃고 있지만 날 위해 웃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듣고 싶었지만, 들리는 건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뿐. 아이들은 내가 예전에 자주 했던 놀이를 하고 있었고, 바라보는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그 눈물엔 아마도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뒤섞여 있었을 거다. 그렇다, 어린 시절은 어른에게 그리움이며 회한이다. 워즈워스가 시 ‘무지개’에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마냥 뛰누나”라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결론 내린 건 순수에 대한 무한한 동경의 표현이었다. 한 시골학교에서 성탄절.. 더보기
[여적] 일관성과 변절 사이  박정희는 변신의 귀재였다. 일제 때 창씨개명도 두 차례나 했다. 1940년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기 마사오였는데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제 만주군으로 복무하다 귀국 후 육군 장교가 돼 남로당에 비밀 가입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체포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군부 내 남로당원 명단을 군 특무대에 실토해 살아남았다. 박정희의 처신은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특출나게 변화무쌍한 것이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씩 소신과 생각을 바꾸며 살아간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다. 엄밀하게 말해 초지일관한 삶이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관성엔 벗어나도 되는 허용치란 게 있을까. 변신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