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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치와 예의  공자가 길을 가다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사연인즉 오래전 시아버지와 남편이 각각 호랑이에게 물려 숨지더니 이번엔 아이마저 호랑이의 제물이 됐다는 것이었다. 산 아래에도 마을이 있지 않냐고 묻자 여인은 “그곳은 관리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 도저히 살 수가 없다. 호랑이가 있어도 여기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 공자가 산 전국시대는 예(禮)와 악(樂)이 무너져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공자는 이런 혼란은 무력이 아니라 서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공경하는 예를 회복함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 등 수많은 성현들이 이른바 예치(禮治)를 가르쳤지만 현실에서 예의는 거의 언제나 정치와는 거리가 먼 덕목이었다. 권.. 더보기
99 대 1 투쟁, 그 다음은 지난 주말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시위를 보면서 문득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케케묵은 구호가 생각난 게 아주 뜬금없는 건 아니다. 시위의 성격과 전개양상에 비추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이 시위는 분노한 사람들이 80여개 나라, 900여 도시에서 동시에 벌였다. 단결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에 분노한 사람들인가. 뭉뚱그려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마르크스식으로 분류하면 부르주아지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 곧 노동자다. 이들은 다수다. 얼마 전까진 이들을 선택된 20%에 끼지 못한 80%라 불렀는데 이번엔 이들 스스로 “우리는 99%다”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를.. 더보기
[여적] 어떤 박봉타령   박봉의 다른 표현인 ‘쥐꼬리만한 봉급’은 절묘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기막힌 표현은 우리말에만 있지 않나 한다. 월급날이 와도 많은 가장들의 어깨를 처지게 만드는 게 쥐꼬리만한 봉급이다. 벌써부터 마누라의 ‘쥐꼬리…’ 타박이 들리는 것 같아 편치 않다. 이래저래 박봉에 시달리는 서민과 쥐꼬리만한 봉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조현오 경찰청장(오른쪽 사진)이 박봉과 낮은 처우에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엊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왜 (장관이 아닌) 차관급 보수를 받아야 하느냐”며 “내가 휴가를 가나, 주말에 쉬기를 하나”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쥐꼬리…’란 말만 안 썼지, 그 심정이 서민들의 박봉타령이나 진배없어 보인다. 설마 경찰청장이 그럴 리가,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