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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인간과 정치


정치는 누가 하나. 정치인이 한다는 답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 정치인은 누구냐고 묻게 되고, 답은 정치하는 사람이라는 식의 순환논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것은 말장난이지만 정치란 개념이 포괄적이고, 정치인이란 직업이 변호사나 엔지니어처럼 영역이 분명치 않고 모호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엊그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오늘 실시되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나라당은 성토 일색이었다. 홍준표 대표는 “안 원장은 서울대와 융합과학기술 발전에 전념하는 게 맞다”고 말했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박 후보를 겨냥해 “남자가 쩨쩨하게 치졸한 선거 캠페인 하지 말라”고 했다. 좀 더 공식적으로는 안형환 한나라당 선대위 대변인의 논평이 있다. “안 교수도 정치를 하려면 정정당당히 사표를 내고 나와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 신문은 ‘안철수 교수는 학자인가 정치인인가’란 사설로 맞장구쳤다.



이들은 안 원장이 박 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처신이며, 따라서 교수와 정치인에 양다리 걸치지 말고 소속을 분명히 하라는 주장인 것 같다. 아니면 이런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자격도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는 정치에 대한 대단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우선 정당법·공직선거법은 교수의 정치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실정법상으로나 어떤 면으로도 떳떳하지 못할 게 없다. 안 그러면 그 많은 폴리페서가 나올 수 없다. 인간은 정치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정치는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물론 정치를 소나 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프로로서의 정치인에겐 비범한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 능력이 없어 국민 고생시키는 정치인들을 많이 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이보다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상식과 원칙이다. 오늘날 정치와 정치인이 불신·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일차적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능력들은 꽤 뛰어난데도 그 능력을 상식과 원칙을 파괴하는 데, 사악한 논리를 구사하는 데 쓰는 게 더 문제다. 안 원장은 박 후보에게 건넨 편지에서 옛날 미국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의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이끌었다며 다시 상식과 원칙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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