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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2008 촛불과 2011 ‘점령하라’


목하 월스트리트에서부터 시작돼 전 세계를 휩쓴 ‘점령하라’ 시위의 원조는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다. 이렇게 말하면 뜬금없이 웬 자화자찬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겸손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 정권 들어와 워낙 많은 것들이 뒷걸음치고 시민사회도 위축된 처지이지만, 우리가 이 자유분방한 시위운동의 원조임을 주장한다고 해서 뭐랄 사람이 없을 거라고 본다.

반월스트리트 시위 참석자들이 좀비 흉내를 내며 행진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우선 구호의 다양성에서다.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쇠고기 검역주권을 내주고 온 데 대한 항의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제를 넓혀갔다. 의료보험 민영화, 대운하·4대강사업, 0교시, 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반대 등이 그것이었다.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월가 점령시위도 부자 증세, 일자리 요구, 노조 지원, 값싼 건강보험, 군산복합체 해체, 전쟁 종식 등으로 주장이 다양해졌다.
 


시민들이 광우병으로 주저앉은 소 모형을 동원한 채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8.05.21 | 경향신문DB

또 하나는 운동주체가 비정치적, 자발적 시민이란 점에서다. 촛불시위 때 집권세력은 무던히도 배후를 캐는 데 정력을 쏟았다. 일차적으로 광우병 쇠고기 위험을 경고한 MBC PD수첩을 집요하게 선동자로 옭아매려 했다. 또 불순한 의도를 감춘 정치세력이 배후에 있을 거라고 몰아갔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시위현장에 나타난 야당 정치인들은 수많은 촛불 가운데 일부였다. 그들은 조연이었을 뿐 주연은 어디까지나 시민이었다. 월가 점령시위도 순수한 시민운동이다. ‘촛불’이 ‘점령’의 원조를 자처할 만한 이유다. 굳이 다른 걸 찾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태가 지나고도 “촛불을 반성하는 이가 없다”며 자기반성을 거부한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반월가 시위대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힌 점이다.

‘점령하라’ 시위가 시작된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나 보다. 시위가 장기화하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공원에 설치된 의료센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노숙 시위대는 밤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텐트 설치를 뉴욕시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촛불이 다섯 달 정도 타오른 뒤 소멸됐듯 이 점령시위도 피로를 느끼며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어떤 사회운동도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역시, 이들의 목소리와 열망을 조직화할 정치세력, 정당을 만드는 게 관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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