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은 얼마 전 글에서 “올여름 영화시장에서도 한국 공포영화는 (북미 영화시장과는 반대로)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흥행에서 전멸했다”면서도 한 가닥 미련을 표시했다.
“어찌 됐건 확신을 가져볼 만한 부분은, 한국은 여러 모로 ‘괴담의 나라’는 맞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각종 도시괴담들이 양산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문제들과 연관된 괴담들도 대거 창궐하는 환경이다. 불안과 공포가 사회전반에 깔려있다. 공포 장르가 안될 리가 없는 환경이다.”
여기까진 잘된 분석이다. 그러나 그가 영화인들에게 “용기 잃지 말고, 계속 도전해 보길 기대한다”라고 독려한 부분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한다.
그의 진단대로 한국은 현실이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럽다. 바로 그것 때문에 어지간한 공포영화론 대박은커녕 본전찾기도 힘들다.
단순화하면 한국은 공포사회다. 도처에 지뢰밭이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이자,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불안사회다. 그들은 양극화의 비정함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
공포영화 시장 형성엔 나쁜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원래부터 공포영화나 괴담과 담쌓고 산 건 아닌 것 같다. 옛날에도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고전적 공포영화가 있었고 <여고괴담> 시리즈도 5까지 찍었다.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
도리어 한국인에겐 유난히 괴담과 친숙한 유전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검증된 건 아니지만 무슨 중대한 정치 사회적 현안이 터지면 빠지지 않고 ‘괴담’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렇다. 목하 한·미 FTA 정국에서도 이색적 괴담이 출현했다. 이른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와 관련된 괴담이다.
이 괴담이란 단어의 쓰임새는 이렇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한·미 FTA가 특히 ISD에서 사법주권 포기라고 할 만큼 한국에 불평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정부와 보수언론은 이는 근거없는 ISD괴담으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나온 괴담 수준이라고 깎아내린다.
이렇게 논의가 괴담 검증 차원으로 넘어가면 진지한 토론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고 봐야 한다. 모 아니면 도만 남는 거다. 한·미 FTA와 같은 국가 중대사를 논하는데 그 격이 어느 결에 여고괴담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렇게 툭하면 괴담으로 치부해버리는 버릇과 사촌뻘이 있으니 그건 색깔론이다. 그 중간지대는 무시한 채 그렇게 몰아버리면 소통은 거기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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