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질문하는 직업이다.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지만 이 정의가 맘에 든다. 게다가 아무나 만나는 직업이다. 둘을 묶으면 기자는 아무나 만나 질문하는 직업이다. 이것은 기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팔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자라고 하면 누굴 만나고 묻는 것에 일단 관대하다. 다른 사람이라면 꺼릴 질문이라도 기자에겐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기자들에겐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는 의식도 있다. 물론 바로 기자란 이유로 격렬한 거부감에 부닥치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 기자가 되면 빨리 이 생리를 터득하도록 조련된다. 경찰서, 병원 영안실은 좋은 훈련장이다. 영안실에 들어서면 영정과 조화를 살피며 사건 냄새를 맡고 질문을 던진다. 때론 예의없고 불손하게 받아들여지더라도 할 수 없다. 고인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혹 억울한 사연이라도 있으신지요….

권리이자 의무인 질문은 직업병처럼 기자를 따라다닌다. 질문하는 기자들의 생리를 말할 때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이다. 1998년 6월 클린턴이 방한해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기자들의 관심은 한·미관계가 아니라 미국 정가의 최대 이슈인 르윈스키 스캔들이었다. 질문은 그 쪽으로 집중됐다. 기자들은 한국에 와 있다는 것엔 아랑곳없이 추궁성 질문을 던졌다. 클린턴은 곤혹스러워했지만 답변을 피하지 않았다.

 

                        르윈스키와  클린턴. 기자들은 둘의 섹스 스캔들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해댔다.


지난주 김인규 KBS 사장과 기자들의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차기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에 선출된 것을 계기로 열린 간담회에서 김 사장은 “질문을 가급적 ABU에 관한 걸로 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기자는 KBS의 도청 의혹에 대해 질문했다.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그의 입장을 물었다. 김 사장은 “오늘은 도청과 관련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며 “기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김 사장도 오래 기자 생활을 한 만치 자신이 ABU 회장에 당선된 의미 따위를 기자들이 궁금해하지 않았음은 알았을 거다. 기자들이 제일 궁금한 건 역시 도청사건이었다. 그런데 성실한 답변은커녕 예의를 입에 올렸다. 이런 것도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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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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