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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역사왜곡의 죄

먹물 들어간 사람치고, ‘역사의식이 없다’란 평을 듣고 기분 나쁘지 않을 이 없다. 그 불쾌감은 ‘인간성이 안 좋다’는 평가와는 또 다른 느낌일 거다. 역사의식이란 나와 우리의 존재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식하느냐일 터인데,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것은 개인 차원의 얘기지만 국가·사회로 범위를 넓혀도 매한가지다. 역사란 개인을 넘어선 집단의 기억, 기록이기에 국가·사회가 여하한 역사의식을 갖고 사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역사왜곡이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성향 중학교 교과서가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 “한·일 강제병탄이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식민지 정책이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기술한 것에 대해 한국은 역사왜곡이라며 몹시 불쾌해한다. 한·일 간의 외교갈등으로도 비화한다. 이런 역사 기술의 결정적 문제점은 학문적 고증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부분적 사실과 희망들을 끌어모아 ‘역사적 사실’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일본 우익과 한국 우익은 스케일이 다르다. 사진은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


이번엔 한국 차례다. 엊그제 교육과학기술부는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했는데, 그 자의적(恣意的) 성격이 왜곡투성이인 일본 교과서를 방불케 했다. 다른 것이라면 일본은 자국 식민정책을 미화한 반면 우리는 독재의 역사 같은 자기 치부를 가리는 데 치중했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고증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이란 점은 똑같다. 민주주의에 자유를 붙여야 한다는 억지주장을 끝내 관철시켰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사라졌다. 친일파 청산 노력에 대한 기술도 삭제됐다. 쉽게 말해 현 정권이 껄끄러워할 만한 내용은 다 빠지고 희망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역사왜곡은 똑같다. 그게 아니라면 일본 것은 불륜, 내 것은 로맨스란 생각인가.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에 전율하는 것은 그들의 오도된 확신 때문이다. 한국 우익도 이것이 올바른 길이란 확신에 차 있을 거란 점에선 같을 것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지난 8월 역사교육과정을 고시할 때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치기하면서도 구국의 결단 같은 걸 느꼈을지 모른다. 이렇게 착각과 독선이 비약과 비논리를 일상화시켜 역사 기술에까지 미칠 때 파시즘은 머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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