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내일은 비 긴 장마 속에 김소월의 시 ‘왕십리’가 떠오른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시의 계절은 여름 장마철이다. 시인이 구태여 밝히지 않았어도 ‘(비가)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거나,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란 구절이 그렇다. 하여 ‘모든 것이 비에 젖어 있는 왕십리’에서 우리는 시가 노래하는 이별의 정한에 공감한다. ‘한 닷새 왔으면 좋지’란 표현에 대해서는 엇갈린 해석도 나오나 보다. 하나는 “(이별 때문에 가슴 아픈데) 닷새 정도만 오면 됐지 왜 자꾸 오느냐”라는 거고, 다른 건 “기왕 올 거면 좍좍 닷새는 쏟아져라”란 뜻이라는 거다. 하지만 시인은 이 부분을 모호.. 더보기 [여적] 권력기관 소설가 이호철이 1966년 겨울 ‘창작과 비평’ 창간호에 발표한 는 이발소가 무대다. 서른 남짓 돼 보이는 사내가 들어오면서 단박에 이발소의 평온은 깨진다. 사내는 시종 고압적 언동으로 이발사와 손님들을 불편케 한다. 소설은 사내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는다. 다만 “때가 어느 땐지도 모르고, 이 사람들이…”라거나 “도대체 정신들이 안돼 있어요. 당장 빨갱이들이 나오면 어쩔려구”란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그가 ‘기관’에서 일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옛날에 정보기관으로 통하는 ‘기관’은 셌다. ‘기관원’의 위세도 대단했다. 당시는 5·16 후 군사정권 아래 살벌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사회였다. 중앙정보부라고 하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할 만큼 기세등등한 권력기관이었다. 는 이런 시대의 자화상이다. 서울 .. 더보기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훌륭한 시는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다른 말로 감정이입을 시키는 힘이 있다. 요즘 내 귓전을 맴도는 시가 있으니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침묵 속에서’다. 시는 감정이입의 폭이 소설보다 넓다. 즉 제멋대로 해석할 여지가 더 크다. 이 시가 좋은 까닭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억장이 무너질 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때, 전라도 사투리로 ‘중치가 막힐’ 때, 저 무수한 소란과 웅성거림에 몹시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침묵하게 된다. 이런 내 감정이 시 ‘침묵 속에서’에 제대로 투사된다. 네루다는 노래했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 더보기 이전 1 ··· 66 67 68 69 70 71 72 ··· 1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