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호모스크립투스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이다. 그건 본능 같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는 호모루덴스(유희인), 호모로퀜스(언어인)이자 ‘호모스크립투스’, 즉 기록하는 인간이다. 원시시대엔 동굴 암벽에 그림을 그렸고, 종이에 기록을 남겼다. 종이 자체가 기록에 대한 인간 욕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엔 사이버 공간이 주요 기록 장소다. 왜 기록하는가. ‘본능이니까’라고 답하면 순환논법이 된다.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속 시원한 답을 찾기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록을 하며 살지만, 왜 기록하는지에 대해선 선뜻 답이 안 나온다. 질문이 철학적이어선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오마하 해변에서 카파가 찍은 사진은 초점이 안 맞고 흔들렸다. 그러나 긴박.. 더보기
[여적] '추축국' 독일과 일본의 차이 과거 저지른 잘못에 사죄하는 독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헌화 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브란트는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묵념했다.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에게 올린 진심어린 사죄였다. 훗날 이 돌발 행동에 대한 브란트의 설명도 유명하다. “나는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에 무릎을 꿇은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 지난달 29일 도쿄 한 우익단체의 강연장.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바이마르헌법 아래서 나치정권이 탄생했다면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헌법을 바꾼 독일 나치의 수법을.. 더보기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1974년 5월 오종상씨(당시 34세)는 경기 평택에서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말 한번 잘못했다가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오씨는 학생에게 “정부가 분식을 장려한다면서 고위층은 국수 몇 가닥에 계란과 고기가 태반인 분식을 한다. 그러니 국민이 시책에 순응하겠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북과 합쳐서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혐의도 받았다. 여고생은 학교 선생님에게 이 말을 전했고 선생님은 오씨를 신고했다. 그는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일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정부를 비판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몰렸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불러주는 대로 썼더니 ‘자생적 공산주의’란 칭호를 씌웠다. 죄명은 반공법과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다. 오씨는 출소 뒤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으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