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호철이 1966년 겨울 ‘창작과 비평’ 창간호에 발표한 <고여 있는 바닥-어느 이발소에서>는 이발소가 무대다. 서른 남짓 돼 보이는 사내가 들어오면서 단박에 이발소의 평온은 깨진다. 사내는 시종 고압적 언동으로 이발사와 손님들을 불편케 한다. 소설은 사내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는다. 다만 “때가 어느 땐지도 모르고, 이 사람들이…”라거나 “도대체 정신들이 안돼 있어요. 당장 빨갱이들이 나오면 어쩔려구”란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그가 ‘기관’에서 일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옛날에 정보기관으로 통하는 ‘기관’은 셌다. ‘기관원’의 위세도 대단했다. 당시는 5·16 후 군사정권 아래 살벌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사회였다. 중앙정보부라고 하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할 만큼 기세등등한 권력기관이었다. <어느 이발소에서>는 이런 시대의 자화상이다.
서울 내곡동 국정원.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란 원훈석이 서있다.
그 세상은 거의 반세기 전이다. 요즘 세상에 진짜 ‘기관원’은 이발소 사내마냥 촌스럽게 굴지 않는다. 중정의 후신 국정원의 모토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당연히 존재 이유는 국가안보이며, 원장·차장과 직원은 정치나 선거에 관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즉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호사가들은 다르다. 가령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을 4대 권력기관이라고 규정해 놓고 비교를 일삼는다. 국정원법 등 어디를 봐도 ‘권력기관’이란 말은 없다. 관습적으로 언론 등이 그렇게 쓸 뿐이다. 그러니 인터넷에서 보게 되는 “국정원과 검찰 중 누가 더 권력이 세나요” 같은 질문도 우문이다. 기관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역할이 다른 것이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이게 헷갈리나 보다. 엊그제 국정원은 “2007년 노무현이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했으며, 안보를 위해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는 성명을 냈다. 얼마 전 원장은 국회에 나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공개했다더니 그새 논리가 바뀌었다. 생각하건대 국정원은 아직 이발소 사내처럼 전근대적 미망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들에게 진짜 걱정거리는 조직의 명예, 국가안보가 아니라 현재 누리고 있는 권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지만 절대로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국정원 스스로의 개혁은 절대로 안될 거다. 이번 성명이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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