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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오바마의 궤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외교공관들에 대한 국가안보국(NSA)의 전방위적 도청에 대해 “다른 나라들도 하는 행위”란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탄자니아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유럽이든, 아시아든 정보기관은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하고 언론에 공개된 정보 이상의 통찰력을 얻기를 원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정보기관이 왜 필요하냐”고 말했다. ‘미국이 정보를 모으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런 거라면 전 세계 어느 정보기관이든 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도청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들 하는 것이란 투다.

그는 지난달 초 에드워드 스노든이 비밀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의 존재를 폭로했을 때도 “테러 방지를 위한 약간의 사생활 침해”라고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EU) 등 우방국들의 반발을 달래려는 마음이 앞섰는지는 몰라도 이번 발언은 논리가 아주 치졸하다. 논리학의 초보랄 수 있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 탄자니아  기자회견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

 

 

상대방도 자기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며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피장파장의 오류다. 흔한 상납사건에서 “다들 받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항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2011년 8월 국회 강용석 의원 제명 투표에서도 이 논리가 등장한다. 상식을 벗어난 성희롱 발언이 문제가 된 강 의원을 김형오 의원은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예수의 말을 인용해 감쌌다. 이게 먹혔는지 제명안은 부결된다. 하지만 이치를 따지자면 김 의원은 “당신들은 깨끗한가”라고 의원들에게 제명 자격이 있는지를 물을 게 아니라, 성희롱 발언이 의원직 제명 요건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주장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도청은 다른 나라들도 하는 일들이라며 빠져나갈 게 아니었다. 그건 논점을 흐리기 위한 ‘물타기’일 뿐이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이 주권국가 대사관을 도청하고 전산망에까지 침투하는 행위가 왜 정당한 것인지를 논증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는 않다. 이번에 도청 대상이었음이 밝혀진 외교공관들과 유엔본부 EU 대표부는 엄연히 국제법상 불가침 지역이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과 유엔본부협약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NSA의 도청은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하버드대 대학원 법학박사 학력인 오바마는 이를 알고 있을까. 아니면 총기가 많이 흐려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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