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마시는 술에 ‘스피르트’란 게 있다. 알코올 원액, 주정(酒精)으로, 쉽게 말해 100% 알코올이다. 20년 전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있을 때 이걸 처음 마셔봤다. 러시아 친구가 ‘안전하게 마시는’ 요령을 알려줬다. 먼저 숨을 크게 내쉰 뒤 단숨에 들이킨다. 곧바로 찬물을 마신다. 화상 방지용이란다. 그 다음엔 검은 빵, 이크라(철갑상어알) 같은 안주를 먹는다.
이런 극단적 독주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러시아의 대표 술은 보드카다. 러시아에 이런 속담이 있다. “400리는 거리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고, 40도가 못되면 술이 아니다.” 속담에서처럼 러시아인은 독한 술을 즐기는데, 그게 보드카다. 40도면 위스키와 비슷하지만 러시아는 주법이 다르다. 50g 정도를 원칙적으로 단숨에 들이킨다. 홀짝거리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따라서 파괴력도 다르다.
대표적 독주로 정평있는 보드카. 맨 왼쪽 '루스키 스탄다르트' 등 다섯 종류는 러시아 보드카이고, 맨 오른쪽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스웨덴산 '압솔루트'다.
이 40도를 정착시킨 사람은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19세기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물과 알코올의 결합에 대하여>였다. 그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이상적인 알코올 도수를 40도로 규정했다. 그 전까지 보드카 도수는 들쭉날쭉했다고 한다. 멘델레예프가 교수를 지낸 상트 페테르부르크엔 보드카박물관도 있다. 필자는 작년 여름 출장길에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예의 러시아 주법으로 보드카를 오랜만에 마셔 보았다.
보드카에 비하면 알코올 20도 정도인 우리 대표 술 소주는 ‘맹물 같다’는 러시아 사람도 보았다. 한데 소주도 원래 그렇게 약한 술은 아니었다. 전통소주는 논외로, 1924년 처음 나온 진로 소주는 35도였다. 그 도수가 유지되다가 1973년 25도짜리가 나왔다. 그 뒤 2000년대 들어 소주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도수 낮은 소주를 내놓고 있다. 지금은 소주 하면 19도 정도가 보통이고, 지방에선 17도 이하도 생산된다.
이런 추세를 거스르기라도 하듯 ㅎ사가 25도짜리 소주를 내놓았다고 한다. 갈수록 밍밍해지는 소주가 불만이던 일부 애주가들에겐 반가운 소식 같다. 소주 도수가 낮아지는 것이 소비자들 취향 변화 때문이라곤 하나, 술을 더 팔기 위한 상술이란 시각도 만만치 않았던 터다. 하지만 이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의 출고가가 375㎖ 1병에 9400원이라니 서민들 마시기엔 부담일 듯하다. 입력 : 2013-07-26 21:35:06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호모스크립투스 (0) | 2013.08.03 |
---|---|
[여적] '추축국' 독일과 일본의 차이 (0) | 2013.08.01 |
[여적] 내일은 비 (0) | 2013.07.24 |
[여적] 권력기관 (0) | 2013.07.12 |
[여적] 오바마의 궤변 (0) | 2013.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