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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반성의 조건 관우가 명의 화타에게 수술을 받는다. 전투 중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의 상처가 깊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 했다. 화타는 고통에 몸부림칠 것에 대비해 환자의 몸을 묶으려 했으나 관우는 괜찮다며 수술을 시킨다. 대신 관우는 측근 마량을 불러 바둑을 둔다. 화타의 이마엔 땀이 흘렀고 막사엔 낭자한 유혈 속에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관우는 태연히 바둑에 열중했다. 삼국지의 유명한 진중(陣中) 수술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마취도 없이 뼈를 깎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타가 실제론 마비산(痲沸散)이란 마취제를 썼다는 말도 있다. 이 고사를 꺼낸 건 ‘뼈를 깎는 반성’이란 유래는 알 수 없되 유구한 세월 사용된 표현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 반성 .. 더보기
[여적] 문·사·철과 청년실업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며칠 전 높은 청년실업률에 대해 뜬금없이 ‘문(文)·사(史)·철(哲) 과잉공급론’을 폈다고 한다. 그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공장에선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학에서의 문사철 과잉공급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청년실업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불일치)에 의한 것이지, 기업의 일자리 수요 자체는 아주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한 곳은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였던 만큼 공식적 발언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사학·철학, 다시 말해 인문학 전공자 과잉공급이 청년실업률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은 상당히 새로운 접근이며,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문제 주무장관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살펴볼 이유가 충분히 있다. 박 장관이 때아닌 문사철 논란을 제공한 셈이다. .. 더보기
원전이 정답 아닌 100가지 이유 2001년 발생한 9·11테러는 ‘묵시록적 사건’으로 묘사되곤 했지만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묵시록적 성격이 그보다 더하다고 생각한다. 9·11 며칠 후 나는 한 칼럼에 “사람들이 쌍둥이 빌딩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화염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는 입소문은 이 사건의 묵시록적 성격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고 썼다. 세기초였지만 세계무역센터의 드라마틱한 붕괴 광경이 던진 충격은 세기말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컸다. 테러 후 세계는 2개의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학자들이 9·11 이전과 이후로 시대구분하는 용어를 쓸 만큼 파장은 심대했다. 그러나 10년 후 일본에서 터진 원전 사고는 묵시록적 사건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이런 게 진짜 묵시록적 암시 아닌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