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 반성의 조건
김철웅
2011. 4. 30. 14:15
관우가 명의 화타에게 수술을 받는다. 전투 중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의 상처가 깊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 했다. 화타는 고통에 몸부림칠 것에 대비해 환자의 몸을 묶으려 했으나 관우는 괜찮다며 수술을 시킨다. 대신 관우는 측근 마량을 불러 바둑을 둔다. 화타의 이마엔 땀이 흘렀고 막사엔 낭자한 유혈 속에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관우는 태연히 바둑에 열중했다. 삼국지의 유명한 진중(陣中) 수술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마취도 없이 뼈를 깎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타가 실제론 마비산(痲沸散)이란 마취제를 썼다는 말도 있다.
이 고사를 꺼낸 건 ‘뼈를 깎는 반성’이란 유래는 알 수 없되 유구한 세월 사용된 표현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 반성 앞에 거의 기계적으로 갖다붙이는 수식어가 ‘뼈를 깎는’이다. 여야 없이 정치인들이 이 표현을 즐겨 쓴다. 선거에서 지기만 하면 즉각 뼈를 깎겠다고 한다.
하도 많이 쓰다 보니 “그렇게 깎아댔으니 더 깎을 뼈도 안 남았겠다”는 말이 나왔지만 그것도 이젠 우스개 축에 못 낄 정도다. 지난 재·보선 후 한나라당에서 또다시 뼈 깎는 소리가 들린다. 대변인의 일성이 “뼈를 깎는 각오로 국민의 뜻을…”이다. 한 여성의원은 “창조적 파괴만이 답”이란 글을 올렸다. 재창당이란 말도 했다.
이렇게 반성과 쇄신 다짐의 새 버전도 나오지만 본질은 진부한 ‘뼈를 깎는 반성’ 그대로다. 왠가. 말로만 뼈를 깎기 때문이다. 말이 그렇지, 뼈를 깎는 수술은 화타가 환생해도 매우 어려운, 무지하게 아픈 수술이다. 관건은 뼈를 깎는다는 식의 레토릭, 수사가 아니라 행동, 즉 정치행위·정책·이념의 전환이다. 그것이 정치적 반성의 절대적 조건이다. 화장을 고치는 것 정도로는 진정한 반성이 될 수 없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해하는 모습의 한나라당 지도부를 보면 적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뭘 고뇌하나. 날아간 지역구인가, 의석 수인가, 살길 찾기의 묘수인가.
화타는 요새로 치면 유능한 외과의사였다. 한나라당이 필요한 건 무슨 체질 개선 같은 내과적 치료가 아니라 과감한 외과 수술이라고 본다. 환부를 찾아 외과적 수술로 도려내기다. 그것 없이 반성이니, 쇄신이니, 거듭나는 계기 운운하는 것은 다 사기로 판명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