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며칠 전 높은 청년실업률에 대해 뜬금없이 ‘문(文)·사(史)·철(哲) 과잉공급론’을 폈다고 한다. 그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공장에선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학에서의 문사철 과잉공급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청년실업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불일치)에 의한 것이지, 기업의 일자리 수요 자체는 아주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한 곳은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였던 만큼 공식적 발언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사학·철학, 다시 말해 인문학 전공자 과잉공급이 청년실업률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은 상당히 새로운 접근이며,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문제 주무장관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살펴볼 이유가 충분히 있다. 박 장관이 때아닌 문사철 논란을 제공한 셈이다.
먼저 대학이 문사철 전공자를 많이 배출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의 근거다. 과잉공급이라 함은 적정 공급을 전제로 한 말인데, 그는 어느 정도를 적정하다고 보는 것일까.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킬 수 있는 무슨 데이터와 계산방법을 갖고 하는 말인가. 그게 아니고 막연하게 해본 소린가. 그렇다면 높은 청년실업률의 책임을 엉뚱하게 인문학, 나아가 인문학 전공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는 현실이다. 졸업 후 취업률이 낮아 대학에서 폐과되는 문사철 학과도 수두룩하다. 모든 게 학문 탐구보다는 실용을 먼저 따지는 세태 탓이다.
그가 별 근거 없이 한 말이라면 문사철은 쓸모없는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것이란 인식을 드러냈다는 혐의를 갖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이며 모독이다. 새삼스럽지만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문사철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상상력은 인문학이란 날개를 달 때 진가가 나타난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모든 문제의식의 기초가 된다. 카이스트 사태에서도 인문학적 교양이 처방으로 제시됐다. 그럼에도 문사철과 청년실업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심리가 궁금하다. 거기엔 인문학에 대한 협애하고 경직된 인식, 그리하여 인문학적 상상력의 빈곤이란 문제가 깔려 있지 않나. 언젠가 이어령씨는 인문학의 위기가 곧 사회 전반의 위기라고 우려했다는데,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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