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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독사과 만평  

숲에서 백설공주가 마녀와 만난 장면이다. 공주는 사과 광주리를 들고 있는 마녀에게 묻는다. “잠깐만요. 일본에서 오셨나요?” 공주는 손에 든 돋보기로 사과를 살피던 중이었다. 다른 손엔 신문을 들고 있는데 ‘일본 방사능’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며칠 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IHT)에 실린 만평이다. 첫눈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산 식품이 방사성물질에 오염돼 있을 가능성을 풍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IHT는 뉴욕타임스가 발행해 전 세계에서 발매되는 유력 영자신문이다. 이 신문이 일본 식품을 독사과에 빗댄 건 일본으로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동화 속에서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죽음에 이른다. 비록 세태를 풍자하는 만평이라고는 해도 너무했다고 느꼈을 수 있다. 뉴욕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뉴욕타임스에 “일본산 식품에 대해 근거 없는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항의했다. 총영사관 홍보센터장은 “일본산 식품은 일본에서나 미국에서나 충분한 방사선 검사를 하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항의를 받은 뉴욕타임스는 “이의 제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만평의 원전(原典)에 궁금한 구석이 있다. IHT는 중국의 관영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의 만화가가 그린 것이라고 만화 귀퉁이에 부기해 놓았지만 전재 여부는 분명치 않다. 차이나데일리는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가 내는 신문이다. 

이번 일은 가령 ‘독사과 만평사건’처럼 무슨 사건으로 부를 만한 건 아니다. 하지만 몇해 전 있었던 큰 사건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마호메트 만평 파문이다. 이 사건은 2005년 9월 덴마크 신문 율란츠포스텐이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마호메트 등 12컷 만평을 실은 데서 비롯됐다. 노르웨이 잡지가 이듬해 이를 전재하면서 무슬림의 반발이 확산됐고 결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격렬한 시위 끝에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사태로 번졌다. 당시 사건에는 이슬람 창시자를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신성모독, 9·11 테러 후 전체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범시하는 풍토, 문명충돌적 성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 독사과 만평건도 만만치 않은 주제를 건드리고 있긴 하다. 왜 아니겠는가. 원전과 방사능 오염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숙제와 관련된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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