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시인 다르위시(1941~2008)에게 희망은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팔레스타인 해방과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겐 종교적 독선이 치유하기 힘든 질병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시골 마을의 목사 테리 존스의 행태를 보면 그가 그런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지난달 20일 이슬람 경전 코란을 피고로 모의재판을 벌인 뒤 이를 불태웠다. 코란 소각 장면을 인터넷으로 공개했다. ‘화형식’을 거행한 이유는 코란이 폭력을 부채질한다는 것이었다.
존스 목사가 코란을 갖고 소각 소동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9·11테러 9주년 때도 코란을 불태우는 행사를 예고했다가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말리자 실행을 중단했다. 그러나 계획을 철회한 게 아니라 연기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 뒤 끝내 이번에 뜻을 관철했다. 이를 종교적 독선이란 불치병으로 보는 이유다.
코란 소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격렬한 항의시위를 촉발해 유엔사무소 직원 12명 등 20여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무슬림에게 코란 소각은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데 대한 존스 목사의 반응은 놀랍도록 태연스러웠다. “(유엔 직원 살해는) 매우 비극적이고 범죄적 행동이다. 이슬람교는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의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슬람 국가가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를 퍼뜨리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며 관련 개인과 국가에 사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 코란 소각이 초래할 파장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경고가 있었다. 그럼에도 코란 화형식을 강행하고 그로 인해 분출된 분노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이번 사건을 기독교 근본주의 대 이슬람 근본주의의 충돌로 파악하더라도 원인제공자는 어디까지나 존스 목사다. 이번 사건은 매우 어처구니 없는 짓이 신앙의 이름으로 결행된 뒤 교활한 논리로 합리화되는 사례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사건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려는 한 광신 목사의 돌출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럴 바에는 코란과 성경을 모두 태우는 게 어떨까. 실제로 한 호주 변호사가 그런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양측에서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다고 한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민족, 국민 (0) | 2011.04.18 |
---|---|
[여적] 밥 딜런 (0) | 2011.04.10 |
[여적] 중산층 표심 (0) | 2011.03.31 |
[여적] 결사항전 (0) | 2011.03.24 |
[여적] 리비아 ‘내전’ (0) | 2011.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