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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결사항전 

한국인만큼 ‘결사(決死)’, 곧 ‘목숨 내놓고’란 말에 익숙한 국민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툭하면 결사반대요, 결사저지다. 시위현장에 가 보면 안다. 농민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결사반대하고 중소상인들은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제주도민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결사저지하겠다고 시위를 벌인다. 정치판엔 또 결사 반대하고 저지하는 게 얼마나 많나. 심지어 해병대 훈련병 현빈의 연평도 자대 배치 가능성에 팬들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결사란 말은 일상적 레토릭이 됐지만 본뜻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쓸 게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해 반대하는 데는 대단한 각오와 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사반대를 외치다 금세 조용해지는 여러 사례들을 보면 말의 인플레가 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서방의 공습이 계속되는 리비아에서 독재자 카다피가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결사항전은 문자 그대로 죽을 각오로 맞서 싸운다는 뜻이다. 그가 말하는 결사항전은 얼마나 진정성이 있나. 이 말도 그저 과장법에 불과할까. 카다피가 직접 결사항전이란 표현을 쓴 건 아니다.

지난달 시민봉기 초기에 그는 사태가 외세개입 때문이라며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 때까지 싸워 순교자가 되겠다”고 연설했다. 지난 19일 공습이 시작됐을 때는 서방의 군사행동을 “식민주의 십자군의 침탈”이라며 이슬람 국가들의 결집을 촉구했다. 22일엔 “나는 이곳에 있다”는 말을 세 차례 반복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카다피의 어법을 ‘결사’란 수사에 만성이 된 한국 언론이 결사항전으로 압축 표현한 듯하다.

분명한 것은 카다피가 그저 빈말로 호언을 늘어놓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항복하기보다는 끝까지 저항하며 자존심을 지킬 것 같다는 말이다. 이것은 서방에는 몹시 우울한 전망이다. 서방의 ‘희망사항’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방으로서는 이 제한적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나고, 한편으로 카다피가 자기 살길을 찾아 망명길에 오르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

그런데 현실은 카다피의 결사항전 대 서방의 작전 혼선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카다피는 단호한데 서방은 작전지휘권, 공습의 목표 등을 놓고 일사불란함을 잃고 있다. 서방은 속전속결이 희망인 데 반해 카다피가 노리는 것은 장기전이다. 이대로는 그럴 공산이 커지고 있다.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가 개입한 최초 사례가 지닌 실험성의 한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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