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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체 게바라의 추억

1951년 12월 아르헨티나의 젊은이 두 명이 모터사이클 여행에 오른다. 23세인 체 게바라와 6년 연장인 알베르토 그라나도를 실은 낡은 오토바이는 ‘포데로사(힘센 녀석)’로 명명됐다. 컴백이란 강아지도 동승했다. 두 사람은 8개월 동안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치며 남미 대륙을 북상한다. 무일푼 여행으로 때론 아마존강에 ‘맘보탱고’란 뗏목을 띄우고 낭만에도 젖었으나 이들에게 다가온 건 헐벗은 남미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페루 산파블로 나환자촌에 2주간 머물면서 값싸고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못 받는 원주민들의 박탈당한 삶을 목격했다. 의학도와 생화학도인 이들은 환자들을 돌보고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체험하며 미래의 소명(召命)을 깨닫는다. 체는 혁명가로서, 알베르토는 자연과학도로서.
 
이 여행 이야기는 나중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란 영화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다. 영화는 그라나도가 쓴 <체 게바라와의 여행>과 1967년 체가 사망한 후 출간된 그의 글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엊그제 이 영화 에필로그에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던 그라나도의 부음이 들려왔다. 향년 88세. 

1959년 체가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그라나도는 체의 초청을 받아들여 1961년 쿠바로 이주했다. 이후 아바나 대학에서 생화학을 가르치며 줄곧 살다가 그곳에서 별세했다. 볼리비아 산중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다 생을 마감한 체만큼 파란만장하진 않았어도 그의 일생 역시 혁명가 친구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필시 젊은 날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두고두고 반추할 추억거리였을 터. 

노년에도 그는 친구를 회상했다. “내가 가장 평가하는 건 체의 정직함이다. 그에겐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의 통찰력을 믿고 공유하기 전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체의 힘에 대해선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우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추종할 만한 인물이 됐다. 부패한 인간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모습을 볼수록 체라는 인간성은 크고 위대해진다. 그는 찬양의 대상인 신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따라야 할 전범이 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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