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구제역에 걸려 돼지들이 생매장을 당하는 광경을 담은 8분짜리 영상이 공개됐다. 구제역이 창궐한 석달 동안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진 참상들의 종합판이었다. 제목은 ‘생매장 돼지들의 절규’. 돼지들은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히며 문자 그대로 절규했다. 그 비명소리는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비슷했다. 구덩이로 던져진 돼지들은 처음엔 정상적으로 서 있다가 그 수가 늘어나면서 나중엔 세로로 선 채 다른 돼지들에게 눌려 압사됐다. 마지막에 던져진 돼지들은 매몰된 상태에서 다음날까지도 모진 목숨을 이어 비명소리를 냈다. 돼지들이 인간 식탁을 위해 찌운 살로 서로를 압살하는 장면은 괴롭고 불편한 진실이었다.
구제역 초기 살처분 때는 생매장을 되도록 피하는 듯하더니 내놓고 생매장이 자행되고 있다. 살처분 소·돼지 가운데 90%가 넘는 돼지들은 거의 모두 생매장되고 있다. 이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가축전염병예방법이나 농림수산식품부의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에는 생매장 금지가 명시돼 있지 않다. 지침에는 사살, 전기충격, 타격, 약물사용 중 선택한다고만 돼 있다. 안락사 약이 부족하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야만을 벌이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현장 사람은 물론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날 영상을 본 사람들도 충격적 장면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학살이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분노했다. 구제역 발생 이후 한국의 공장식 축산, 과도한 육식문화 등 허다한 문제가 제기됐다. 성찰도 빠지지 않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성경 구절은 정복이 아닌 공존의 가르침으로 해석해야 한다고도 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동물이라는 자성론도 일었다.
그러나 안타까움의 눈물과 반성, 불편한 심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정 전율해야 할 것은 그러면서 무감각해지는 일이다. 그것은 악어의 눈물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무차별 살육의 비인도성에 길들여진다면 그 죄가 더 무거울 수 있다. 법이 없다 해서 죄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오래전 동물 살처분 방법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구제역 감염 소·돼지를 주사, 전기충격으로 안락사시킨 뒤 매장하고 있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가축의 밀집 사육을 규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돼지에게 안락사라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못하는 곳, 바로 인간 상실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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