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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후진형 모금

KBS가 ‘대한민국 국군 우리가 응원합니다’란 국민성금 모금 행사를 2주간 열었다. 군 장병들에게 발열조끼를 보내기 위한 모금이었다. 이를 위해 두 차례 특별생방송까지 내보냈다. 호응은 뜨거웠다. 모모한 정치인, 대기업들이 줄이어 성금을 냈다. 이보다 값진 건 시민들의 동참이었다. 많은 가족들이 행사장까지 나와 따뜻한 마음을 보탰다. 자동응답시스템(ARS) 모금도 10만건을 넘었다. 당초 예상했던 20억원을 2배 넘게 모았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모두에게 군장병들은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들이고 형이며 오빠 동생들이다. 뉘라서 엄동설한에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따뜻한 조끼 한 벌 보내고 싶은 마음 안 들까. 

그럼에도 이 행사를 접하는 마음이 흐뭇하기는커녕 영 불편하다. 왤까. 우선 몇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어서다. 첫째, 우리 군이 어쩌다 시혜의 대상이 됐나. 경제력 세계 12~13위권인 한국의 국방비는 31조원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2.9%, 세계 12위다. 이런 나라에서 연간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장병용 발열조끼조차 조달 못해 국민성금으로 사 입히자고 하니 이상하다. 그 많은 국방예산은 다 어디에 썼다는 건가. 

또 다른 의문은 소위 선진 방송의 격(格) 부분이다. 지금이 1970·80년대도 아닌데 국민모금 방송은 참 촌스럽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KBS는 특별방송에서 최전방 부대를 취재하며 전 국민의 애국적 결집을 강조했고 개그맨들은 이날을 ‘발열조끼의 날’로 정하자고 외쳤다. 이러니 일본 공영방송 NHK가 자위대 물품 조달을 위한 모금방송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봤느냐는 비아냥도 나올 만하다. 방송 선진화를 추구한다고 말은 하면서 생각은 수십년 전 군 위문품 시절로 후진한 것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예술섬을 시민 기부금으로 짓는다는 기발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시의회가 ‘부자들만 이용할 게 뻔하다’며 예산을 깎았다”면서 시민들이 낸 1만~2만원을 모아 건물을 짓겠다고 했다. 발열조끼 모금과 예술섬 시민 기부금 건립 구상엔 공통된 심리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국민(시민)에게 직접 호소하면 통할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공적 영역을 사적으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민은 머지않아 우롱당했음을 깨닫고, 몽니를 부리는 사람이 누군지 훤히 알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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