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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김정일의 손

뇌졸중 증상은 백인백색이지만 가장 흔한 것이 반신마비다. 이 경우 대개 뇌 손상 부위의 반대편 팔다리에 마비가 온다. 가령 좌뇌를 다치면 오른쪽 반신마비와 함께 언어장애가 오는 식이다. 이것은 팔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신경이 대뇌에서 내려오다 뇌간의 아랫부위에서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증세에 따라 약물치료와 함께 몇 년 또는 평생 물리치료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뇌졸중을 앓고 있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불편해 보이던 왼손을 자유롭게 쓰는 모습이 엊그제 공개됐다. 지난 10월 촬영한 것이라는데 화면 속에서 신축 아파트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일은 왼손을 자연스럽게 올려 문을 열고 있다.

이는 당장 그의 건강이 호전된 것 같다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왼쪽 팔다리를 잘 못쓰는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자유로운 왼손은 건강 호전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곧바로 후계세습이나 대남정책의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낳는다. 

폐쇄사회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건강상태는 곧 국가기밀이다. 북한뿐 아니라 구소련, 쿠바 등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된 국가에서 지도자의 건강은 극비이며 안보문제로 받아들여졌다. 국내적으로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그렇다. 지도자가 한두 주 모습을 안 드러내면 바깥에선 건강이상, 와병설이 나온다. 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건 그것대로 뉴스가 돼 회복했다느니, 사진 속 풍광으로 봐서 옛날 것이라느니, 그걸 공개한 의도가 무엇이라느니 한다. 워낙 판단자료가 희소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 해야겠다. 

한편으로 김정일의 손에 관한 보도는 성찰적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김정일의 손만 바라봐야 하나. 여기서 말하는 김정일의 손은 문 여닫는 손이 아니라 은유·상징으로서의 손이다. 작년 한반도에선 천안함 침몰, 연평도 사태 등 세계를 놀래키는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다. 새해에도 김정일이 어떤 처분을 내릴 건지 기다리며 살아야 하나. 이건 아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뭘까. 이른바 상호주의 정신에 충실해 김정일 못지않게 ‘세게’ 나가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프리핸드, 유연한 손을 찾아내 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