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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코미디

현실 정치에서 코미디보다 훨씬 웃기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왜 아니겠는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보온병 폭탄 발언을 터뜨린 뒤 현업 개그맨들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얘기가 있다. 우린 뭘로 먹고 사냐는 거다. 인터넷에 이런 공고가 떴다. “이번주 <개그콘서트> 쉽니다. 보온병으로 웃음폭탄을 투척해 주시는 안상수 대표님을 우리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군복 야전상의 입고 개그 짜는 중입니다.” 
 
코미디·개그가 침체다. 위의 얘기는 물론 우스개고 필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다. 오죽했으면 며칠 전 개그맨 김병만이 KBS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받으며 “MBC, 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 주십시오”란 말을 했겠는가. 김병만이 이런 수상소감을 밝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 SBS의 공개코미디 프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7년여 만에 폐지됐고, MBC도 <개그야>와 <하땅사>를 없앴다. 공개코미디는 김병만이 3년 동안 달인코너를 연기하고 있는 <개그콘서트>밖에 안 남았다. 그가 KBS시상식에서 이례적으로 타방송사를 언급한 것은 방송에서 코미디가 사라지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였을 거다. 

방송에서 코미디가 홀대받는 것이 코미디 침체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나 동어반복적 성격을 갖는다. 방송사로선 코미디가 안 팔리기 때문에, 시청률이 낮기 때문에 코미디 프로 폐지를 결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뭉뚱그려서 세태 변화의 반영 아닌가 한다. 만담, 원맨쇼, 바보연기는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TV 연예프로의 대세는 정통 코미디에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옮겨갔다. 정통 코미디는 기발함과 짜임새, 연기로 웃음을 이끌어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는 재치와 순발력, 캐릭터가 지배한다. 5분 연기를 위해 일주일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하는 코미디가 스타들의 순발력이 돋보이는 버라이어티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희극이 인기를 누렸다. 코미디를 찾는 심리는 원초적이란 얘기다. 코미디가 위기라지만 코미디만이 줄 수 있는 웃음의 영역이 사라진 건 아니다. 희극인들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풍자와 해학이 흘러 넘치는 좋은 코미디가 안 나올 리 없다. 그런 코미디 한 편이 막장으로 치닫는 저질 드라마보다 백배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