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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구제역 못잡아놓고 ‘다방농민’ 탓하는 정부

이문구의 자전적 연작소설 <관촌수필> 가운데 ‘여요주서(與謠註序·1976)’에서는 옛날 시골 다방 풍경이 작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 펼쳐진다. “나봐 미쓰 정, 내게 즌화 온 거 웂어? 누구 챚어오지 않았어?”
종업원들이 그렇다고 하니, “나봐― 나 좀 봐― 공보실에서두 아무 거시기 웂었구? 아니 대일기업으 강 사장헌티서두 전화가 웂었다 그게여? 이상헌디. 나봐― 즌화는 왔는디 누구 다른 것이 잘못 받은 거 아녀? 그럴리사 웂는디. 나봐, 거북선 있으면 한 갑 가져와.” …“미쓰 정, 거기서 말여, 부군수 들어왔나 즌화 즘 늫 봐. 있으면 나 여기 있다구 허구.” 
 
이문구의 관찰은 이어진다. “나는 가죽점퍼의 자세하는 투며 말투며 모두 남더러 들어달라고 부러 떠드는 허텅지거리라고 짐작했다. 그는 출입문만 삐끔해도 흘끔거리고 계산석의 전화가 울릴 적마다 돌아보았으며 종업원이 오가는 대로 허벅지와 엉덩이를 집적거렸는데,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도 어림할 수 있었으니 이른바 읍내 유지의 허세라는 것이었다….”

<관촌수필>의 이 장면이 떠오른 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엊그제 ‘다방농민’이란 말을 썼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한·미FTA 추가협상과 한국의 성장전략’이란 세미나에서 그는 소외된 농수산업에 대한 대책을 묻자 답변하면서 “(농업의) 생산성은 많이 떨어진다. 다방농민이라는 말이 있다. (농민의) 모럴해저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정부가) 투자했더니 돈이 엉뚱한 데로 가더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방농민이란 말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으나 통상 본업인 농사를 도외시한 채 다방에서 공무원들과 어울리면서 보조금을 받아가는 부도덕한 농민을 의미한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다방에 죽치고 앉아 공무원들과 교제하면서 정부한테서 눈먼 돈 타먹는 궁리나 하는 ‘무늬만’ 농민인 부류다. 딱 소설 속 역전다방에 나오는 속물적 인간형이다. 

놀라운 건 통상장관의 놀랍도록 단순화한 사고구조다. 그런 질문에는 수입개방 때문에 사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민들을 생각해 여러가지 성의있는 답변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곧바로 튀어나온 게 농업의 비생산성이고 보조금 탈 궁리를 하는 극소수 다방농민이었다. 과연 그런 CEO 대통령 밑에 그런 통상장관답다고나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