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겪은 노년층에게는 저마다 피란의 추억이 있다. 당시 피란민·실향민들의 심정을 절절하게 담은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1953)’가 널리 불렸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노래는 흥남부두, 1·4후퇴, 부산 국제시장, 영도다리 같은 언어를 통해 피란민의 절박한 처지를 형상화하면서 전쟁통에 생이별한 ‘금순이’와의 재회를 염원한다. 
 
전쟁·내전이 있는 곳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난리를 피해 떠나는 사람들, 즉 난민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한번 터지면 희생자 수보다 훨씬 큰 규모의 난민이 나온다. 난민문제를 다루기 위해 1950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UNHCR)가 창설되고 51년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는 등 난민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기울어지고 있다. 하지만 처방이 발생 규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난민 수는 약 6200만명이며 이 중 3400만명이 전쟁난민이란 통계가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자국 안에서 떠도는 국내난민이다. 가령 UNHCR에 등록된 이라크 난민 수는 20만7000명이지만 시리아 등 주변국들이 받아들인 난민들을 합치면 18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 지난 여름 조사된 이라크 국내난민도 150만명이나 됐다.

난민마다 기구하지 않은 사연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처절한 것이 쿠르드 민족의 삶이다. 인구가 3000만명이나 되지만 나라가 없는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걸프전, 이라크 전쟁 등 난리가 터질 때마다 수많은 난민을 낳으며 고통을 겪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이 섬 주민 1300여명이 하루아침에 난민신세가 돼 버렸다. 대부분이 인천의 한 찜질방에서 기약 없는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칠순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는 TV에서 “이게 바로 피란민 생활이지, 6·25와 똑같이 이것도 전쟁”이라며 수심에 잠겼다. 낯선 임시수용소에 들어온 아이들은 천진하게 뛰논다. 그러면서도 “폭탄 무섭다”고 말한다. 영락없는 난민촌의 살풍경이다. 그런데 난민촌 밖에선 대북 강경론이 비등하다. 몇 배로 응징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보다 훨씬 많은 난민이 나오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가.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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