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속도전을 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 학문이란 점에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에게는 느긋하고 참을성 많은 성정이 요구된다. 그러지 못해 발생한 희대의 ‘참사’가 있으니 1971년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다. 고고학자 김원룡이 생전에 자전에세이 <노학생의 향수>에서 밝힌 회고담이다. “일본의 어느 유명한 고고학자는 그런 행운은 백년에 한번이나 올까말까 하다고 축하해 주었다. 이 엄청난 행운이 그만 멀쩡하던 나의 머리를 돌게 하였다. 이 중요한 마당에서 고고학도로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일어난 것이다.”
 
발굴단장 김원룡은 무령왕릉 처녀분이 1450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는 엄청난 사건이 펼쳐지는 데 압도돼 버렸다. 그 바람에 “몇 달이 걸렸어도 나무 뿌리들을 가위로 하나 하나 베어내고, 그러고 나서 장신구들을 들어내는” 발굴의 ABC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발굴을 끝낸 것이다. 김 박사는 훗날 “여론에 밀려 이틀 만에 발굴을 끝낸 것은 내 생애 최대의 수치였다”고 술회했다.

고고학계는 지금도 ‘왕릉을 하루 이틀 만에 발굴한 것은 어떤 후진국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며 애석해 하고 있다. 3~4년이 걸리더라도 신중을 다해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얻었어야 했건만 가령 수천점의 유리 구슬조차 팔에 매단 건지, 목에 건 건지도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과 속도전의 관계는 상극이다. 고고학 앞에 속도전이란 수식어를 붙인다면 이는 ‘동그란 사각형’처럼 형용모순이 된다. 저 폼페이, 트로이가 그러했듯 고고학은 땅속, 물속에서 숨죽이며 햇볕을 기다리고 있는 유물과 유적에 생명을 불어넣는 학문이다. 이로써 인간은 과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속도전 굉음이 요란한 4대강 공사현장에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마저 속도전으로 설렁설렁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문화재 지도 감독 관청인 문화재청이 속도전 공사에 차질이 없도록 적극 협조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4대강 문화재살리기 고고학교수 모임’이 엊그제 문화재청의 요식적 조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강도 생명도 소중하며 강 주변의 선사·고대유적들도 소중하다. 이걸 죄다 무시하는 속도전은 생명살리기가 아니라 범죄다.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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