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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논리와 비논리

문화비평가 진중권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란 기발한 제목의 책을 낸 게 벌써 10여년 전이다. 알려진 대로 이 책 제목은 극우논객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 만큼 책은 ‘박정희교’로 상징되는 우익들의 박정희 숭배와 한국 사회에 온존한 파시즘적 요소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진중권이 우익들을 비판하기 위해 우익들의 논리를 즐겨 차용한 점이다. 책은 우익들이 쓴 텍스트에서 뽑은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진중권은 이를 “제 입으로 한 말을 제 입으로, 자신이 내세우는 논리로 뒤집고 반박하려는” 텍스트 해체 전략과 관계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이 주제들이 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 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는 당시 망명한 지 얼마 안되는 주체사상 이론가 황장엽을 통해 북한의 ‘수령관’을 소개한다.
“북한은 천재적 예지와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위대한 수령(영도자)을 모시고 있다….”
조갑제는 박정희가 “서구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식 정치이념을 만들고 싶어했다”거나 “시도 쓰고 서예에도 능했으며 그림도 잘 그린 지도자”라고 찬양했다. 진중권은 지도자를 ‘천재’나 ‘천분’이란 말로 수식하는 것은 좌우익 파시스트들의 공통점이라고 본다. 

이런 텍스트 해체 전략은 비논리를 깨부수기 위한 논리적 접근이었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자기 말과 행동의 비논리성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우기면 된다”는 태도가 일상화해 어떤 사안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최근 관련 종사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낙지머리’ 파동의 경우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대로 된 사과나 유감 표명을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시쳇말로 ‘배째라’며 버티면 된다는 태도로 보일 정도다. 

엊그제 총리가 대독한 이명박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도 이 같은 비논리의 전형이었다.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은 생명살리기”라며 “내년에 사업이 완공되면 국민은 푸른 자연과 함께 한층 여유있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빼놓지 않고 경제살리기, 공정사회, 서민희망을 입에 올렸다. 소통, 논리, 설득 따위는 쓸데없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