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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위기 속 동료애

강원룡 목사가 젊은 시절 겪은 체험담이다. 1944년 겨울 그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일경에 붙잡혀 함경북도 회령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그는 회고록 <역사의 언덕에서>(2003)에서 그때를 “지옥을 보았고 목숨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두 평 크기에 28명이 수용된 콩나물 시루 감방에서 눕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24시간을 전부 찰떡처럼 붙어앉아 있어야 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졸다 깨다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옆사람의 머리를 탁 받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러면 당장 “자식!” 하는 욕설과 함께 싸움이 붙곤 했다. 그러면 간수가 쫓아와 ‘다이꼬 삔따 100’이란 벌을 내렸다. 마주 보고 상대 따귀를 100대 때리는 벌이었다.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이간질이었다. 두 사람은 점차 서로 때리는 강도가 세어지고 원수 같은 사이가 된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동정, 위로를 나누기는커녕 이렇게 미워해야 하는 게 고통이었다…. 

위기나 극한상황에 처한 한 동아리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는 것이다. 워낙 성정이 악해서 적의에 사로잡히는 이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일제하 강 목사의 체험이 그렇다. 가족 구성원이 죄다 따로 노는 형편없는 가정을 일컫는 ‘콩가루 집안’도 대개 이런 사정 탓이다.

다른 하나는 똘똘 뭉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비상(非常)한 상황이 만든다.
가령 어떤 가족이 힘을 모아 대단한 역경을 딛고 일어설 때 사람들은 인간승리란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두 가지 태도가 뒤섞이기 십상이다.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의 경우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고 끝까지 다른 승객들을 돕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었고, 혼란을 막는다는 구실로 출구마저 봉쇄된 3등석 승객들도 있었다.

69일 동안 지하 622m 갱도에 매몰돼 있던 칠레 광부 33명이 생환하기 시작했다. ‘불사조’란 이름의 캡슐을 타고 차례로 지상으로 올라온 이들의 이야기가 진짜 인간승리 아닌가 한다. 이들은 긴 시간 칠흑 같은 공포, 절망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서로 동료더러 먼저 캡슐을 타라고 양보하는 통에 구조순서를 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