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이러다 민란 일어난다

옛 민중들의 삶이 잘 녹아든 것이 민란(民亂)의 역사다.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도가 되어 난을 일으켰다. 민중의 역사는 민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62년 진주지방 백성 8만여명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백낙신의 학정을 못이겨 봉기한 것이 진주민란이었다. 1893년 전라북도 고부군수 조병갑은 만석보를 증축하며 군민을 수탈하고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고 돈을 강제 징수하는 등 온갖 폭정을 자행하다 동학농민운동을 유발한 직접 원인이 되었다. 수탈이 심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곳에서는 민란이 일어나지만 그 난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까지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며 이 운동에 ‘유쾌한 민란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였다.
다 좋은데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민란이란 이름을 골랐을까. 문씨는 이에 대해 “민란이란 백성이 당하고 당하다가 도저히 참지 못할 때 들고 일어나는 것”이라며 정치권에 맡겨놓고 지켜볼 수는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일종의 민란이자 시민혁명을 하자는 대자보를 써붙이고 있다”고도 했다.

혁명보다 민란이란 복고적 표현을 선택한 데는 이 말에 더욱 짙게 배어 있는 불온·반역적 뉘앙스가 감안된 듯하다. 민란은 실패하면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걸 각오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결행하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처절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문씨는 “이명박 정부 2년 넘게 끔찍한 역주행을 지켜보고 있으나 분개하면서도 2012년에 정권교체가 될 거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야권 단일정당만이 정권교체의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민란’이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이 집권세력이 아니라 분열된 야권이란 점이다. 한나라당이 엉망인데도 야권이 희망을 주지 않으니 국민이 기댈 곳이 없으므로 국민 100만명의 뜻을 모아 각 야당에 압력을 넣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첫번째 전복 대상이 야권 내부의 기득권인 셈이다.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둔다면 최초의 민란 성공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상 성공한 민란은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승패는 미지수다. 진보진영에서도 돈키호테 같은 시도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왕 할 거면 치열하게 하기 바란다. 좌절한 민란이 유쾌할 수 없으므로. 저들이 지난 ‘좌파정권’ 10년 동안 얼마나 절치부심, 와신상담해 정권교체를 이뤘는지 잘 기억해 둘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