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會同)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이는 것’이다. 회담이 어떤 의제를 놓고 한자리에 모여 토의하는 것인 데 비해 회동은 이보다 덜 형식적이고 넓은 의미의 만남을 뜻한다. 그렇지만 장삼이사, 갑남을녀의 만남을 회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용례를 보면 안다. 1989년 10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골프회동’을 가졌다. 이 골프회동은 이듬해 초 정치권의 지각변동 또는 희대의 훼절(毁節)로 평가되는 3당 대통합의 단초가 됐다.
국제정치에서 각국 대표들은 회담을 위해 회동한다. 가령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가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회동하고 6자회담과 관련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식의 보도를 자주 접한다. 1945년 2월 미·영·소 3국 수뇌가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회동해 패전국 처리 등에 관해 논의했다. 이것이 얄타회담이다. 그러고 보면 만남은 만남이되 정치·외교적으로 자못 중요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회동이란 칭호를 붙여주나 보다. 이렇게 갑돌이와 갑순이의 만남이 절대로 회동이 될 수 없는 것은 한자 숭배의 허위의식 탓도 있지 않나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11개월 만에 만났다. 전 언론이 어김없이 이를 회동이라 불렀다. 여기까진 다 좋다. 하긴, 회동이면 어떻고 만남이면 어떤가. 현직 대통령과 차기 유력 주자가 모처럼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데. 이보다 우리를 개운치 않게 만드는 건 이 회동의 비밀스러움이다. 두 사람이 95분 동안 밀담을 했다는데 그 내용이 알려진 게 없다. 고작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합의했다는 전언뿐이다.
회동이든, 만남이든 자유다. 그걸 공개하든 비밀에 부치든 자유다. 그들이 그러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나.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국민들의 시선이다. 국민들은 “분위기가 좋았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기대한 게 아니다. 티격태격하다 무슨 비밀작전 하듯 깜짝쇼 하듯 만나더니 정권 재창출이란 말 말고는 함구다. 이러니 친여 신문 사설에서까지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고 알권리 충족에도 반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이것은 소통이 아닌 짝짜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견 그럴듯한 표현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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