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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영국의 젊은 총리

어제 도하 각 신문은 39년 만에 40대 총리 후보가 나온 사실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했지만 세계적으로 젊은 총리나 대통령이 나온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해 영국 총리에 오른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수는 만 43세다. 버락 오바마는 지난해 48세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재작년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된 건 42세 때다. 그를 후계자로 지목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2000년 47세에 대통령에 올라 8년간 재임했다.
 
더 젊은 총리도 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러시아 총리 서리를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는 36세였다. 어느 국가지도자라서 입지전적 인물이 아닐까마는 가이다르에게도 그런 구석이 있다. 가이다르의 아버지 티무르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브다’ 기자로 1961년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사건을 종군했으며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의 친구였다. 일곱살에 아버지와 쿠바를 방문한 가이다르는 일찍이 경제학적 천품을 드러냈다. 그는 “아바나의 과일 시장엔 물건이 적다. 하지만 100㎞만 가면 산에 따지 않은 오렌지가 널려 있다”며 “이것이 바로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것은 24세 때였다. 

이 시점에 가이다르가 생각나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시계가 몹시 불투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를 방불케 한다고는 못해도 목하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혼란·추악상들을 보면 이곳이 ‘신생국’ 러시아보다 월등하게 성숙하고 선진적인 사회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시장경제 개혁 전권을 위임받은 가이다르는 ‘충격요법’이란 급진 개혁을 단행해 1992년 1월1일을 기해 모든 가격규제를 철폐했다. 이로 인해 순식간에 시장가격은 1000% 이상 올랐다. 민중들에겐 재앙이었다.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지만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그는 저주의 대상이 됐다. 

40대 총리 후보를 보면서 드는 의문이 몇개 있다. 그는 대통령의 수족(手足) 총리가 아닌, 나라의 혼란상을 덜어 낼 진짜 총리가 될 수 있을까. 가이다르의 실패한 개혁을 예로 들었지만 적어도 그만한 소신을 갖고 진짜 서민을 위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젊은 패기로 지명자의 눈치를 안 보고 직언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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