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가 호모 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란 학명을 붙인 이래 인간에게는 다양한 이름이 부여됐다. 인간은 호모 루덴스(유희인)이며 호모 로퀜스(언어인)이다. 동시에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인)이자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이며 호모 릴리글로수스(종교인)이다. 휴대전화를 생활화한 호모 모빌리쿠스도 있는데 요즘 스마트폰 광풍을 보면 선견지명이 있는 명명 같다.
덧붙인다면 인간은 핑계의 동물이다. 오래전 우리 조상은 이 인간 속성을 파악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거나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이 증거다. 인간은 변명하고 핑계를 대며 산다. 거짓말이 그렇듯 어쩔 수 없이 하는 선의의 핑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핑계의 자기복제적 속성을 경계해야 한다. 핑계는 핑계를 낳는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보다는 핑계로 빠져나가다 보면 다른 핑계를 계속 대야 한다.
지난 여름 총리, 장관 인사청문회는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상당수 내정자들이 병역기피,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등 이른바 고위공직자 4대 필수 의혹에 걸렸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엔 잡아뗐고 그게 안 통하면 핑계를 댔다. 딸이 왕따를 당해 위장전입을 했다거나 쪽방촌 투기를 노후대비용이라고 둘러댄 것 따위다. 그 필사적 핑계가 눈물겨웠다.
사람이 핑계의 동물임을 인정해도 거기엔 엄연한 법도가 있어야 한다. 고위공직자가 공적인 문제를 핑계로 모면하려 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들의 핑계는 장삼이사의 핑계와 달리 공공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유다. 그러나 엊그제 국감장은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만고의 진리임을 확인케 했다.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감사의 경우 한 증인은 “15대 종손인데 공사로 선영이 훼손될 위기”라며, 다른 증인은 “풍수지리 강좌를 수강해야 한다”며 출석하지 않았다. 압권은 딸 특채 파문으로 사퇴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불출석 핑계다. 일본에 체류 중인 그는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 등”을 불출석 이유로 제출했다. 그 때문에 국민이 받은 충격은 안중에 없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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