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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스푸트니크 쇼크

1957년 10월4일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 미국 분위기를 조지 워싱턴대 우주정책연구소장을 지낸 존 록스돈은 전했다. “50년대 우리 영화와 TV는 우주로 진출하는 얘기들로 넘쳐났다. 그런 마당에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이 소련이라는 사실은 경악이었다. 그 시대 분위기는 돌아보기도 힘들다.” 미·소가 첨예하게 대립한 냉전기에 들려온 스푸트니크 발사 소식은 공포 자체였다. 미국은 두 차례 위성 발사에 실패한 상태였다. 소련이 위성을 쏠 수 있다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도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충격과 공포 속에 미국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1년 만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됐고 의회는 국가방위교육법(NDEA)을 통과시켰다. 이후 본격 우주개발 경쟁이 시작됐다. 소련이 61년 최초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 발사에 먼저 성공했지만 미국은 아폴로계획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끝에 마침내 69년 인간 달착륙을 성공시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국정연설에서 이 반세기 전 스푸트니크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스푸트니크 순간(모멘트)’에 와 있다”고 현재를 규정한 것이다. 그 의도는 명백하다. 미국의 현실이 그때에 비견될 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어떤 현실, 어떤 절박함인가. 오바마는 스푸트니크 때의 소련처럼 미국의 경쟁상대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사용한 것임은 능히 짐작된다. 어느 틈에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은 성큼성큼 쫓아오고 있다. 중국의 정치·경제력이 종국적으로 미국을 따라잡을 시기에 대한 예측들이 무성하다. 오바마는 모멘트라는 중립적 단어를 선택했지만 내심 ‘쇼크’나 ‘위기’와 같이 구체적인 표현을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격당하는 1인자의 안쓰러운 몸부림으로 비치는 게 싫었을 수도 있겠다.

오바마는 나라 밖 경쟁자, 일자리 등을 언급하며 당파를 떠난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이날 민주·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은 각각 상대측 자리에 나눠 앉아 박수를 보내는 등 분위기도 좋았다. 그러나 스푸트니크 순간을 되살리는 연설의 효과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미국 의회는 재정적자 감축 문제를 놓고 전처럼 팽팽한 대립과 갈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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