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내전’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리비아 유혈 사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해결책 모색과도 통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내전이란 용어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비아 사태는 42년에 걸친 카다피의 철권통치에 저항하는 시위로 촉발되었다. 이 점에서는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같다. 그런데 전개 양상이 다르다. 이웃 나라들은 비교적 순탄하게 ‘아랍 시민혁명’을 쟁취했지만 리비아는 극심한 유혈 사태에 빠져들었다. 무한한 권력집착가인 카다피가 군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내전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그럴 만한 요소들이 있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다. 외신은 이를 두고 피바다, 대학살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수십만명의 피란민도 발생했다. 전 국토가 크게 동쪽은 반 카다피 진영, 서쪽은 친위 세력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이런 양상으로 전개되는 바람에 내전이란 용어가 정착된 것 같다. 외국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뉴욕타임스는 요즘 리비아 사태에 대해 “장기 내전으로 빠져들고 있는”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지난 세기 말 체첸에서 처참한 ‘그라주단스카야 보이나(시민전쟁)’를 겪은 러시아의 언론도 리비아 사태 보도에 내전이란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한, 과학적인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내전으로 일반화하기엔 리비아 사태에는 너무나 특별한 점이 있다. 내전은 쌍방이 어느 정도 대등한 무력을 갖고 있을 때 성립한다. 리비아에서 시민 또는 시민군은 거의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쪽이다. 카다피는 친척들이 대신 죄를 인정하고 고백문에 서명하기 전에는 살았건 죽었건 거리에 쓰러진 사람들을 치우지 말라고 명령했다. 시민들은 총격이 두려워 거리에 널린 시신과 죽어가는 부상자들을 방치해야 하는 처지다. 카다피 군은 전투기까지 동원해 무차별 살육을 저지르고 있다. 용병을 고용해 비무장 상태로 시위하는 동족들을 짓밟고 있다. 이런 불균형적 충돌, 일방적 희생을 내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 세월 ‘5월 광주’에서 도청을 점거한 시민군이 무장했다 해서 내란세력, 폭도로 규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것은 카다피 정부군과 혁명군 간의 내전이 아니다. 정확하지 않은 용어 사용은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 정명론을 생각하고 세계가 힘을 모아 신음하는 리비아 시민을 압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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