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아버지 잊을 만하면 무슨 계기를 통해 새삼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이름이 있으니, 아버지다. 옛날의 아버지는 강하고 힘셌다. 굳이 아버지의 의미를 찾고 어쩌고 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버지란 사실 하나로 족했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1996년 나온 김정현의 소설 는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힘겨워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아버지와 아내, 자식들이 이 소설을 찾는 바람에 300만부나 팔렸다. 소설 속 아버지는 작고 초라하다. “내 무엇이 그렇게 비난받고 경멸당할 거리던가. 내 아무리 초라하고 무능했어도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어. 그런데 왜 날 무시하고 경원해. 나의 삶이 성공적이지 못해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나. 하지만 .. 더보기 [여적] 지도자의 탄식 때로는 국가 지도자도 탄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항(陋巷)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내뱉는 탄식과는 다르다.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책임감이다. 가령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 자녀를 꾸짖고 벌 주는 것은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가정사가 잘못된 것을 개탄하며 ‘콩가루 집안’ 같은 표현을 썼다면 문제가 좀 다르다. 가장은 가정사를 직간접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인데 ‘콩가루 집안’이란 탄식엔 그런 책임의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하는 탄식이라면 격이 달라야 한다. 탄식에 무슨 격이냐 하겠지만 책임감과 자기성찰이 묻어나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이명.. 더보기 [여적] 마지막 판자촌 서울에 판자촌이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생계거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청계천변에 판잣집을 짓기 시작해 천변을 따라 긴 판자촌이 형성됐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천변은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뚝딱 짓고 살기에 제격이었다. 판자촌엔 잡화점, 연탄가게, 만화가게 따위가 들어섰다. 1950년대 말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된 후 박정희 정권은 이곳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고 69년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로 철거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 판자촌은 청계천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필자가 6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서울 서대문에도 있었다. 한번은 선생님을 따라 가정방문을 간 곳이 우리 옆동네 판자촌이었다. 필자의 집도 누옥이긴 했지만 그렇게 누추한 집은 처음 보았다. 때는 달동네란 말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더보기 이전 1 ··· 117 118 119 120 121 122 123 ··· 1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