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라 ‘가공할 만한 천재’란 찬사를 듣는 슬라보예 지젝이 이런 걸쭉한 농담을 했다. 15세기 몽골 지배 러시아에서 한 농군과 아내가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말을 타고 오던 몽골 전사가 농군에게 그 아낙을 강간하겠다고 이르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땅에 흙먼지가 많으니 내가 일을 치르는 동안 네가 내 고환을 받치고 있어야겠다. 거기가 더러워지면 안되니까.” 몽골인이 일을 마친 후 가버리자 농군은 기뻐서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아내가 놀라 까닭을 묻자 농군이 답했다. “그 놈한테 한방 먹였다고! 그놈 불알이 먼지로 뒤덮였단 말이야!” 사상가 슬라보예 지젝 | 경향신문 DB 이것은 옛날 사회주의권 반체제 인사들 사이에서 회자된 농담으로, 그들의 항거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이었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더보기 [여적] 아버지 잊을 만하면 무슨 계기를 통해 새삼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이름이 있으니, 아버지다. 옛날의 아버지는 강하고 힘셌다. 굳이 아버지의 의미를 찾고 어쩌고 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버지란 사실 하나로 족했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1996년 나온 김정현의 소설 는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힘겨워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아버지와 아내, 자식들이 이 소설을 찾는 바람에 300만부나 팔렸다. 소설 속 아버지는 작고 초라하다. “내 무엇이 그렇게 비난받고 경멸당할 거리던가. 내 아무리 초라하고 무능했어도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어. 그런데 왜 날 무시하고 경원해. 나의 삶이 성공적이지 못해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나. 하지만 .. 더보기 [여적] 지도자의 탄식 때로는 국가 지도자도 탄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항(陋巷)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내뱉는 탄식과는 다르다.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책임감이다. 가령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 자녀를 꾸짖고 벌 주는 것은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가정사가 잘못된 것을 개탄하며 ‘콩가루 집안’ 같은 표현을 썼다면 문제가 좀 다르다. 가장은 가정사를 직간접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인데 ‘콩가루 집안’이란 탄식엔 그런 책임의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하는 탄식이라면 격이 달라야 한다. 탄식에 무슨 격이냐 하겠지만 책임감과 자기성찰이 묻어나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이명.. 더보기 이전 1 ··· 116 117 118 119 120 121 122 ··· 1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