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남자의 눈물 삶에 내던져진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데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가령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란 유행가 속의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고 절규하는 주인공이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또 어떤가. 인간이 슬퍼하는 데 성별을 따질 건 뭔가. 그럼에도 우리는 유난히 눈물에 관해 남녀를 구분하려는 습속이 있다. 그래서 남자는 쉽게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말이 통용된다. “남자는 세 번 운다”는 속설도 나왔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갔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딱 세 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남자한테 눈물을 금기시한 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 이 ‘미칠 것 같은 세상’에서 살다보면 때론 목놓아 울어도 보고 펑펑 눈물도 흘려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 아닌가.. 더보기 [여적] ‘국물녀 사건’ 시말 요 며칠 사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뜨거운 논란이 된 것으로 ‘국물녀 사건’이 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지하 식당에서 뜨거운 된장국물을 들고 돌아서던 주부 이모씨(52)와 달려오는 허모군(7)이 부딪쳤다. 아이는 화상을 입었고 여인은 사라졌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려 고발했다. 누리꾼들이 가해자를 ‘된장국물녀’ ‘화상테러범’이라고 부르며 비난을 퍼부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이씨는 자진 출석해 진술했다. “아이가 뛰어다니다가 내게 부딪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나도 손에 화상을 입었다. 아이를 방치한 부모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으나 그럴 경황이 없어 그냥 자리를 떴다.” 이런 해명이 나오자 인터넷 반응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 .. 더보기 [여적] 칼춤 사극 같은 데 나오는 중죄인의 사형 장면에서 집행자를 망나니라 불렀다. 처형 광경은 아닌 말로 볼 만했다. 요란하게 치장한 망나니는 형 집행 전 청룡도 같은 큰 칼에다가 입 한가득 물을 머금어 뿜어내곤 했다. 그러면서 한바탕 춘 춤이 칼춤이다. 이렇게 한 건 공개처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구경꾼들은 망나니 칼춤을 보면서 공포와 안도를 동시에 체험했다. 사형 집행인인 망나니 자신의 환각효과도 노렸다. 망나니 칼춤이란 은유가 있다. 죄의 경중을 따져볼 것도 없이 무작정 큰 죄로 몰아붙이는 거친 태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거기엔 ‘난 당사자가 아니므로 처벌과 무관하다’는 면제의식이 깔려 있다. 과거 미국의 매카시즘이나 지금 한국에서 때아닌 부흥기를 맞은 색깔론에서도 발견되는 심리다. 강용석 의원이 .. 더보기 이전 1 ··· 101 102 103 104 105 106 107 ··· 1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