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남자의 눈물


삶에 내던져진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데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가령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란 유행가 속의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고 절규하는 주인공이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또 어떤가. 인간이 슬퍼하는 데 성별을 따질 건 뭔가. 그럼에도 우리는 유난히 눈물에 관해 남녀를 구분하려는 습속이 있다. 그래서 남자는 쉽게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말이 통용된다. “남자는 세 번 운다”는 속설도 나왔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갔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딱 세 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남자한테 눈물을 금기시한 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 이 ‘미칠 것 같은 세상’에서 살다보면 때론 목놓아 울어도 보고 펑펑 눈물도 흘려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 아닌가.


                         푸틴이 울고 있다.


며칠 전 러시아 대선에서 당선돼 세 번째로 집권하게 된 블라디미르 푸틴이 승리를 선언하는 군중집회에서 뜻밖의 눈물을 흘렸대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인간은 희로애락의 동물이고, 푸틴이 외계인이 아닌 다음에야 승리의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 게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푸틴의 눈물이 눈길을 끈 데는 이유가 있다. 좀처럼 안 하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푸틴의 이미지는 차가움과 강함이었다. 과장하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는 실제로 그랬다. 회색 추기경이란 별명답게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으로 학생 300여명이 희생됐을 때도, 2000년 쿠르스크 핵잠수함 사고로 108명이 수장됐을 때도 눈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당장 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로 장기집권의 길을 여는 데 성공한 권력자의 위선적 몸짓이라는.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힘과 권세깨나 있다는 인사들이 ‘남자답지 못하게’ 눈물바람을 보인 일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인과 서민 앞에서 자주 눈물을 내보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해 무상급식 주민투표 기자회견에서 다섯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지난달 퇴임하면서 많이 울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들의 눈물이 별 감흥을 주지 못한 점이다. 이렇게 감정이입이 안되는 까닭은 필자의 정서가 메마른 탓도 있겠지만, 역시 푸틴의 경우처럼 ‘악어의 눈물’을 연상시키기 때문 아닌가 한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프랑스 의사와 카뮈의 ‘페스트’  (0) 2012.03.14
[여적] 비례대표 후보 박노자  (1) 2012.03.13
[여적] ‘국물녀 사건’ 시말  (0) 2012.03.01
[여적] 칼춤  (0) 2012.02.24
[여적] 조수석  (0) 201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