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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칼춤


사극 같은 데 나오는 중죄인의 사형 장면에서 집행자를 망나니라 불렀다. 처형 광경은 아닌 말로 볼 만했다. 요란하게 치장한 망나니는 형 집행 전 청룡도 같은 큰 칼에다가 입 한가득 물을 머금어 뿜어내곤 했다. 그러면서 한바탕 춘 춤이 칼춤이다. 이렇게 한 건 공개처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구경꾼들은 망나니 칼춤을 보면서 공포와 안도를 동시에 체험했다. 사형 집행인인 망나니 자신의 환각효과도 노렸다.



              <옛날 망나니들은 이런 칼을 들고 칼춤을 췄다고 한다.>



망나니 칼춤이란 은유가 있다. 죄의 경중을 따져볼 것도 없이 무작정 큰 죄로 몰아붙이는 거친 태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거기엔 ‘난 당사자가 아니므로 처벌과 무관하다’는 면제의식이 깔려 있다. 과거 미국의 매카시즘이나 지금 한국에서 때아닌 부흥기를 맞은 색깔론에서도 발견되는 심리다.

강용석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을 상대로 제기한 병역비리 의혹에서도 망나니 칼춤 비슷한 게 엿보인다. 사실무근의 의혹을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확대 재생산시킨 의사단체, 극우집단 그리고 언론이 그 장본인이다. 이들이 강용석이라는 문제적 인간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맞춰 턱없는 칼춤을 추었다고 본다. 이들 중 다른 곳은 몰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곳은 언론이다. 언론의 기본인 검증을 소홀히 한 책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이 칼춤을 추며 적극 호응하지 않았다면 한 이상한 과대망상, 자아도취형 인간의 황당한 주장이 세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신뢰성과 거리가 멀었다. 명색 언론이 희한한 여성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유죄판결을 받고도 줄기차게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속셈을 몰랐을 리 없다. 강 의원은 원래 부박성이 검증된 그런 인물이니까 그렇다 치고, 몇 신문이 이 인물에 대한 검증 없이 칼춤을 추다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자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보기 민망하다. 그러면서 “박 시장 쪽의 소극적 대응도 의혹을 키웠다”며 끝까지 피해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생각하건대 이 같은 무책임성은 체질화한 색깔론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한다.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 때를 돌이켜보라.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과 몇 신문의 “아니면 말고”식 무차별적 색깔론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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