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제명안이 지난해 여름 국회에서 부결됐다. 강 의원의 성희롱 발언은 그 전해 7월에 있었고 한나라당은 그를 곧 제명해 무소속으로 만들었지만 의원 제명은 여의치 않았다. 표결에 앞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은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예수의 말을 인용해 그를 감쌌다. “당신들은 깨끗한가. 그렇지 않다면 제명시킬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 발언에 설득돼 “그만한 일로 제명당하면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몇이나 되겠나”라며 마음을 돌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지 강 의원은 금배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성희롱 발언 파문 당시 언론보도 내용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가 논리학에서 말하는 피장파장의 오류' 덕분에 의원 제명을 면했다는 말도 있다.
선거철이 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그 놈이 그 놈이야. 뽑아 주면 뭐해. 놀러나 갈 거야”라며 투표를 안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이명박 정권의 부패와 실정을 비판하면 꼭 노무현·김대중 정권을 끌어들여 “전 정권들은 더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항용 이런 대화가 성립된다. 친구에게 “술 좀 적당히 마시라”고 충고하면 “너도 많이 마시면서 그런 말 할 자격 있느냐”는 반박이 돌아온다. 고속도로에서 과속 단속에 걸렸을 땐 “앞차들도 똑같이 과속했는데 왜 나만 잡느냐”고 항의한다. 젊은 연인들은 “오빤 뭘 잘했다고 그래? 오빤 더하더라, 뭐”라며 토닥거린다.
이런 예들은 공통점이 있다. 잘못을 지적받을 때, 다른 사람도 같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괜찮다고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한다. 김형오 의원은 의원들에게 제명 자격이 있는지를 물을 게 아니라 성희롱 발언이 의원직 제명 요건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주장했어야 했다. 비판이건 충고건 꼭 무슨 자격이 돼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점에서 피장파장의 오류는 논쟁의 논점을 이탈시키고 건전한 논의를 막아 버린다.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여파에서 묘한 흐름이 감지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돈봉투 돌리기 관행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과거 당내에서 “금품살포를 목격한 바 있다”고 말한 뒤 두드러진 흐름이다. 유 공동대표가 무슨 뜻으로 그런 얘기를 흘렸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이 사안에서도 드러난 건 피장파장의 오류다.
<김철웅 논설실장>
입력 : 2012-01-09 21:13:58ㅣ수정 : 2012-01-09 2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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