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졸간에 아버지 김정일의 급서로 북한 권좌에 오른 김정은을 보면서 필자는 2300여년 전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를 생각하게 됐다. 이는 몇 가지 점에서 전혀 뜬금없는 게 아니다. 우선 북한의 3대째 권력승계는 세습왕조란 비판의 설득력을 강화했다. 공산주의 역사에 이런 3대째 세습은 유례가 없다. 둘째, 부왕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되고 왕위에 올랐을 때 알렉산드로스의 나이는 20살이었다. 김정은도 20대 후반에 나라를 물려받았다.
<2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중앙추도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 김 부위원장은 이날 당과 군, 인민을 통할하는 최고영도자로 선포됐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세번째 대목이다. 정복전쟁에 나선 알렉산드로스는 소아시아의 고르디우스에서 신전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는 마차를 만났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 내려왔는데, 매듭이 어찌나 단단한지 아무도 못 풀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칼을 뽑아 매듭을 잘라버렸다. 예언대로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를 정복했다.
오늘날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영원히 풀지 못할 난제란 뜻으로 쓰인다. 알렉산드로스가 이 매듭을 풀지 않고 칼로 잘라버린 것은 요즘 문자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도전자들이 감히 생각조차 못한 혜안을 발휘한 셈이다. 북한의 새 영도자 김정은 앞에는 난마처럼 얽힌 수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그에게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푼 알렉산드로스 같은 혜안이 절실할 것 같다.
그러나 설사 김정은에게 그런 혜안이 있다손치더라도 문제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정치는 젊은 패기와 혜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젊다는 것 자체가 지도자 결격을 의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경륜, 식견, 통찰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이 정치다. 단적으로, 이 새파란 20대 영도자가 인생을 얼마나 알까. 심각하게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만성적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의 인민들은 이제 이 어린 왕자에게 삶을 송두리째 맡기고 살아야 한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제부턴 이 여적의 사족이다. 김정은에 대한 의구심은 남쪽의 박근혜에게도 해당한다.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박근혜에게 국가는 아버지의 유산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정치가 제사이자 효도”라고 진단했다. 연애와 결혼 등 “구체적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균형감각이 안 보인다”고도 했다. 경륜이 꼭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란 얘기 같다.
입력 : 2011-12-29 20: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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