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낡은 책갈피 사이에서 툭 떨어진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우리를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흘러간 노랫가락이 떠오르기도 한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여운의 ‘과거는 흘러갔다’)
이렇게 사진은 우리 인생 한 장면의 소묘로 남게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역사의 기록으로서, 드물게는 역사를 바꾸는 계기로서의 역할도 한다. 여기 멍한 얼굴로 아버지의 영정을 끌어안고 있는 어린 사내아이 사진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어느 외신이 찍었다는 이 사진은 다른 어떤 현장사진 못지않게 그 시대 그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이집트 여성들이 20일 군부의 시위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손에는 여성 구타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들려 있다.>
기록·보도사진을 얘기하려면 전설적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를 빼놓을 수 없다. 카파의 철저한 현장정신은 “당신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란 평소 지론에 담겨 있다. 이 정신에 투철했던 그는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인도차이나 전쟁을 쫓아다니며 화약냄새 풍기는 사진들을 찍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도 그렇게 탄생했다. 공화군 병사가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마치 옆에서 기다리다 찍은 것처럼 포착했다. 이 때문에 이 사진엔 연출·조작 시비까지 일었다.
한 장의 사진은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4·19혁명에서도 한 장의 사진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고교생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고, 신문에 보도됨으로써다. 김주열의 처참한 사진 한 장이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로 끓어오르던 민심에 불을 댕긴 셈이다.
이집트에서 젊은 여성 시위자를 진압부대가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사진이 전세계에 공개돼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의 사진은 지난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군부 시위를 하던 여성을 군인들이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는 장면으로, 이 여성의 옷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났음에도 폭행은 계속됐다. 이렇게 되자 이집트 여성 약 1만명이 엊그제 군부퇴진 시위를 벌였고, 이에 놀란 군부가 유감을 표시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입력 : 2011-12-22 21: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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