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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신중현 한 가지 일에 일생을 바치고 퇴장하는 뒷모습은 아름다운 법. 이런 평가는 신중현에 대해서도 잘 어울린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록의 대부, 한국 록의 산 증인, 한국적 록의 완성자…. 신중현 자신은 어떻게 불리기를 원할까. 이 칠순을 바라보는 로커에게 가장 소중한 건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일 것이다. 신중현은 지난 15일 인천 송도에서 자신의 50년 음악인생을 마무리하는 ‘라스트 콘서트’의 첫 무대를 시작했다. ‘50년 외길’은 빈말이 아니다. 17세 때인 1955년 동두천 미8군 쇼단에서 기타를 잡은 것이 시작이었다. 콘서트는 장대비 속에 진행됐다. 마침 첫 곡이 그의 명곡 ‘빗속의 여인’이었다. 우비를 입은 4,000여명의 관객들은 가수의 열창에 열광했다. ‘커피 한 .. 더보기
[여적] 드레퓌스와 지단 1898년 1월13일 문호 에밀 졸라가 한 신문에 실은 장문의 글 ‘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던 드레퓌스 사건을 반전시킨 결정적 문건이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의 글에서 “나는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한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다”고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1894년 10월 군사 기밀을 독일에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유형의 판결이 내려졌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음에도 반역죄를 적용받은 데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는 보·불전쟁에서 패배해 희생양이 필요했던 군부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드레퓌스는 1906년 .. 더보기
[여적] 체첸의 한 러시아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던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 대통령이 1995년 초 모스코프스키예 노보스치 신문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를 가장한 러시아 비밀정보원의 접근이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나의 생명은 정보원이나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두다예프는 이렇게 대담한 행보를 계속했지만 이듬해 그의 위성전화를 추적한 러시아군의 폭격에 맞아 결국 사망했다. 두다예프는 52세로 죽기까지 체첸의 영웅이자 희망이었다. 그는 구소련에서 체첸이 배출한 유일한 공군 장성으로 91년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한 틈을 타 체첸공화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94년 러시아가 체첸을 전격 침공하자 이에 맞서 ‘민족해방전쟁’을 벌였다. 러시아는 이 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