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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신중현

한 가지 일에 일생을 바치고 퇴장하는 뒷모습은 아름다운 법. 이런 평가는 신중현에 대해서도 잘 어울린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록의 대부, 한국 록의 산 증인, 한국적 록의 완성자…. 신중현 자신은 어떻게 불리기를 원할까. 이 칠순을 바라보는 로커에게 가장 소중한 건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일 것이다.

신중현은 지난 15일 인천 송도에서 자신의 50년 음악인생을 마무리하는 ‘라스트 콘서트’의 첫 무대를 시작했다. ‘50년 외길’은 빈말이 아니다. 17세 때인 1955년 동두천 미8군 쇼단에서 기타를 잡은 것이 시작이었다.
콘서트는 장대비 속에 진행됐다. 마침 첫 곡이 그의 명곡 ‘빗속의 여인’이었다. 우비를 입은 4,000여명의 관객들은 가수의 열창에 열광했다. ‘커피 한 잔’ ‘봄비’ ‘꽃잎’ ‘미련’ ‘미인’ ‘아름다운 강산’ 등 그의 대표곡들이 이어졌다. “저 노래도 신중현의 작곡이었구나”하는 탄성이 나왔다.

신중현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긴 족적은 깊었다.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켰을 뿐 아니라 신인 가수들을 발굴한 프로듀서였다.
신중현은 이렇게 회고했다. 70년대 초반 그에게 박인수라는 가수 지망생이 찾아왔다. 미 8군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테스트를 해 보니 “이런 가수가 있었다니…” 할 정도의 재목이었다. 그래서 이정화의 음반에 넣었지만 재미를 못 본 ‘봄비’를 리메이크해 부르게 했다. 대성공이었다.

반세기의 음악 인생에 어찌 좌절이 없었을까. 75년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휘말려 4년 동안 방송과 공연, 음반판매까지 금지당한 것은 그중에도 혹독했다.
신중현은 앞서 73년 청와대로부터 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정치를 모른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대신 그는 두달 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과 이상을 담은 노래 ‘아름다운 강산’을 발표한다.

신중현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자주 하고 있다. 그 시절에 목표를 세워 집중하면 엄청난 결실을 맺는다고.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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