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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체첸의 한

러시아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던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 대통령이 1995년 초 모스코프스키예 노보스치 신문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를 가장한 러시아 비밀정보원의 접근이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나의 생명은 정보원이나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두다예프는 이렇게 대담한 행보를 계속했지만 이듬해 그의 위성전화를 추적한 러시아군의 폭격에 맞아 결국 사망했다.

두다예프는 52세로 죽기까지 체첸의 영웅이자 희망이었다. 그는 구소련에서 체첸이 배출한 유일한 공군 장성으로 91년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한 틈을 타 체첸공화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94년 러시아가 체첸을 전격 침공하자 이에 맞서 ‘민족해방전쟁’을 벌였다. 러시아는 이 전쟁을 한 국가 안의 ‘내전’이라고 주장하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거부했다.

그러나 민족해방은 체첸인들의 비원(悲願)이었다. 이들의 러시아에 대한 저항의 역사는 약 200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1859년 러시아에 병합된 후로도 결코 러시아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체첸 민족에 대한 러시아의 숱한 박해 가운데 정점이 된 사건은 2차 대전 말기인 44년 스탈린에 의한 카자흐스탄 강제 이주였다. 독일군에게 협력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기아와 추위로, 그리고 게릴라 투쟁과정에서 무려 23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이 러시아에 대한 체첸 민족의 한으로 남았다.

두다예프 못지 않게 걸출한 체첸 지도자였던 샤밀 바사예프가 엊그제 폭사했다. 물론 두 사람의 스타일은 달랐다. 두다예프가 온건하고 지적인 지도자였다면 바사예프는 우선 떠오르는 게 ‘테러리스트’인 강경파였다. 하지만 사생관만큼은 그도 두다예프처럼 뚜렷했던 것 같다. 95년 러시아 남부 부됴노프스크 병원 인질 사건을 지휘한 그는 “테러 행위는 반대하지만 내가 테러를 하게 만든 것은 러시아군”이라며 “영광스럽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 테러리스트의 사망으로 러시아가 테러에서 벗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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