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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굳세어라 금순아’와 난민의 추억 한국전쟁을 겪은 노년층에게는 저마다 피란의 추억이 있다. 당시 피란민·실향민들의 심정을 절절하게 담은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1953)’가 널리 불렸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노래는 흥남부두, 1·4후퇴, 부산 국제시장, 영도다리 같은 언어를 통해 피란민의 절박한 처지를 형상화하면서 전쟁통에 생이별한 ‘금순이’와의 재회를 염원한다. 전쟁·내전이 있는 곳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난리를 피해 떠나는 사람들, 즉 난민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한번 터지면 희생자 수보다 훨씬 큰 규모의 난민이 나온다. 난민문제를 다루기 위해 1950년 유엔난민고등판.. 더보기
[여적] 도발과 응징만으로 어찌 관계를 풀겠나 성인이 아니고서야 한 대 맞으면 맞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법이다. 그래야 직성(直星)이 풀린다. 개인들 사이만 아니다. 보복심리는 국가 간에도 발동한다. 북한의 연평도 무력 도발에 대해 “북의 못된 버릇은 강력한 응징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주장도 인지상정의 발로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2001년 미증유의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국민적 분노로 들끓었다. 언론은 ‘미국이 공격당했다’고 흥분했다. 미국 본토가 외부로부터 처참한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즉각 이 테러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고 이를 ‘21세기 첫 전쟁’으로 규정했다. 곧장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전쟁에 들어갔다. .. 더보기
[여적] 고고학과 속도전  고고학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속도전을 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 학문이란 점에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에게는 느긋하고 참을성 많은 성정이 요구된다. 그러지 못해 발생한 희대의 ‘참사’가 있으니 1971년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다. 고고학자 김원룡이 생전에 자전에세이 에서 밝힌 회고담이다. “일본의 어느 유명한 고고학자는 그런 행운은 백년에 한번이나 올까말까 하다고 축하해 주었다. 이 엄청난 행운이 그만 멀쩡하던 나의 머리를 돌게 하였다. 이 중요한 마당에서 고고학도로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일어난 것이다.” 발굴단장 김원룡은 무령왕릉 처녀분이 1450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는 엄청난 사건이 펼쳐지는 데 압도돼 버렸다. 그 바람에 “몇 달이 걸렸어도 나무 뿌리들을 가위로 하나 하나 베어내.. 더보기